북한은 지난 2년동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십여발, 3번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 등 총 100발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렸다.
지난 30년을 놓고 봤을 때, 북한의 최근 미사일 도발은 빈도나 강도면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다. 미사일 능력은 상당히 고도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최근 제2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말처럼 "(사정거리가 짧은)탄도미사일에 핵을 실으면 바로 한국에 대한 핵 위협이자 핵 공격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위협 속에서 한미도 올해 한미연합훈련에 '핵 작전 시나리오'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북핵 대응과 관련해, 이전까지는 북한의 핵 공격시 미국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보복을 한다는 개념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한미가 처음부터 같이 생각하고, 준비하고, 연습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이 연출되면서 먼 얘기처럼 들렸던 한반도 핵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피부에 와닿는다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게 됐다.
향후 2년동안 'E10'(Elected 10) 역할 수행하는 한국
묘한 시점에 한국은 올해부터 2년동안 유엔 안보리 이사국 활동을 맡게 됐다. 이른바 'E10'(Elected 10·선출직 이사국)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20여년 만에 유엔 안보리 이사국에 한국, 미국, 일본이 동시에 진입하면서 자연스레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3각 협력'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일단 한국은 그동안 참여하지 못했던 안보리 비공식 협의와 문안 협상에도 참여하게 돼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우리의 의사가 더 반영될 수 있는 여건이 생긴 셈이다.
북한 문제에 관심·정보가 없는 다른 안보리 이사국을 설득해 북한과 가까운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에 간접적인 압력을 가하도록 힘을 규합할 수도 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안보리 이사국 임기 개시일인 지난 2일(현지시간) "김정은의 호전적인 신년 메시지에 비춰, 한국은 안보리 선출직 이사국으로서 북한 관련 상황 전개에 따라 즉각적인 회의 소집을 요청할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유엔 안보리에서 한미일이 이사국의 신분으로 공동 보조를 맞춘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학관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북한이 과거와 달리 한국을 '동족'이 아닌 '적'으로 규정하면서 전술핵 사용 가능성마저 시사하고 있는 만큼 그 어느때보다 유엔 안보리 안에서의 한미일 공조가 중요한 시점이 됐다.
황준국 대사는 "이번이 세 번째 안보리 이사국 진출인데, 과거와 비교해 한국의 위상이 크게 올라가 우리를 '메이저 파워'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들이 있다"며 "이에 맞춰 한국도 각 사안별로 우리가 취할 입장을 면밀히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 낼 듯
특히 한국의 안보리 선출직 이사국 진입으로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도 강도 높은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유엔총회에서 19년 연속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는 중국 내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을 언급하면서, 기존의 난민협약은 물론 173개국이 가입한 유엔 고문방지협약도 준수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북한·중국이 '탈북민 북송'을 부인하며 팬데믹 이후 해외 파견 노동자의 귀환이라는 논리를 펴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으로, "고문 위협이 있을 경우 해당국에 개인을 추방하거나 인도해서는 안된다"는 '고문방지협약'을 원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인권결의안' 작성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앞서 강제송환 문안 등을 한국 등 핵심 관련국들과 협의해 왔다.
이제는 한국이 핵심 관련국을 넘어 안보리 선출직 이사국이 된만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핵 개발과의 연계성으로 인해 한국의 국가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사자가 발생함에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돈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북한 주민을 철저히 통제하고 인권 탄압을 일삼아도 국제사회의 제재가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보리에는 현재 60개가 넘는 공식 의제가 있는데, 특정 국가의 인권 문제가 별도의 공식 의제가 된 것은 북한 밖에 없다.
황준국 대사는 "한국이 안보리 이사국 활동을 하는 2024년에는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라며 "사실상 정체상태였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새로 결집하고, 북한 인권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 방안 등을 안보리 내에서 찾고 적용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으로 인해, 'E10'에는 분명한 한계 있어
다만, 거부권이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는 달리, 선출직 이사국으로서의 역할 수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엔대표부 고위관계자는 "특히 북핵 문제와 관련해 안보리 (선출직)비상임이사국인 한국이 안보리에서 논의할 전략이나 복안이 상당히 제한적이고 우려스러운 상황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편들기'가 상당부분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에세다.
앞서 중·러는 북핵 위협과 관련해 2006년 1차 제제 결의부터 2017년까지 모두 열 번의 북한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2021년 들어 북한의 ICBM 발사 등에 대해서는 제재 결의에 반대표를 행사해 번번히 무산시키고 있다.
중국은 미·중 패권 경쟁 차원에서 미국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과정에서 북한의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같은 국제 정세가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 한 북한의 도발에 안보리 차원의 제재는 쉽지 않고, 고작해야 한미 양국의 독자 제재만이 효력을 발휘하는 상황이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그간 안보리 제재가 ICBM 같은 장거리 미사일에 집중돼 왔다는 점이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사정권인 한국에게는 자칫 '구멍'이 생기는 셈이다.
북한이 최근 '단거리 전술핵'을 공공연하게 떠드는 상황에서 ICBM에 치중하고 있는 현 안보리의 논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지가 숙제로 남겨졌다.
'안보리 무용론'속 안보리 개혁 논의 공론화할 필요도
이런 가운데 북한 문제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놓고도 상임이사국간 이견차로 인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안보리 무용론'도 불거지고 있다.
"안보리를 확대 개편하되 상임이사국 대신 선출직인 비상임이사국을 늘리자"는게 한국이 입장이어서, 이 역시 북한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해법이 되기에는 역부족인게 현실이다.
이 방안은 그동안 소외됐던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의 안보리 진출을 높여 안보리의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에는 손을 댈 수 없어 안보리 효율성을 기대하기 힘든 까닭이다.
일각에서는 차제에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제한을 포함한 안보리 개혁 논의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안보리 개혁은 유엔 헌장 개정 사항이다. 여기에는 유엔 회원국 3분의2의 찬성은 물론 상임이사국의 거부권도 살아있는 등 문턱이 높은 것도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