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끊긴 버스터미널, 줄줄이 폐업…"불편"·"생계 막막"

전국서 버스 터미널 '도미노 폐업'
열차·항공에 밀리며 이용객 감소
시민들은 "불편", 상인들은 "막막"
"터미널 상권 확대 필요…공영 전환도 검토" 의견

폐업 1년째인 성남종합버스터미널. 승차홈으로 이용됐던 구역에는 통제선이 쳐져 있다. 정성욱 기자

"터미널 운영 안 해요? 아, 1층에서 타라고요?"

지난 27일 오전 11시 경기도 성남종합버스터미널 상가 지하 1층. 버스를 타러 온 한 시민이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속버스 승차홈'이라는 안내판 밑으로는 통제선이 쳐졌고, 조명은 대부분이 꺼져 있었다.

성남버스터미널은 이미 폐업 1년째다. 터미널 운영사는 버스 이용객이 줄어들고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며 올해 1월 문을 닫았다. 이에 성남시는 터미널 바로 앞 1차선을 버스 대기선으로 지정하고, 임시 승차장을 설치해 운영중이다.

하지만 야외에서 승하차를 해야 하다 보니 승객들의 불편은 커졌다. 궂은 날에는 비바람을 피하기 어렵고, 오랜만에 터미널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승하차 구역을 헤매기도 한다. 성남시에 거주하는 강모(32)씨는 "버스를 타려면 무조건 터미널 밖으로 나가야 하니 춥거나 더울 때 특히 불편해졌다"며 "이렇게 버스를 계속 운영할 거면 터미널을 왜 폐쇄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가 운영을 알리는 현수막. 정성욱 기자

터미널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생계에 직격탄을 맞았다. 손님은 크게 줄었지만, 매달 임대료와 관리비로 여전히 수백만원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터미널 분식집에서 근무하는 A씨는 "임대료와 관리비로만 300만원을 내고 있다"며 "인건비로 나갈 돈이 없어 기존에 일하던 직원들도 어쩔 수 없이 해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변 상인들은 버티지 못하고 다 떠났고, 울며 겨자먹기로 있는데 폐업을 했다는 이유로 이쪽은 냉난방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년간 성남터미널에서 근무해 온 상인 B씨는 "터미널이 문을 닫으면서 손님의 70%가 줄어들었다"며 "나갈 곳이 없어서 우선 버티고 있는 건데, 그냥 막막할뿐"이라고 말했다.


열차·항공에 자리 잃은 버스…터미널 '도미노 폐업'


이용객 감소와 경영 악화 등 문제로 버스터미널이 폐업하는 문제는 전국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31일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에 따르면 전국 버스터미널 수는 2018년 326곳에서 올해 296곳으로 줄었다. 올해만 해도 1월에 성남터미널과 익산 고속버스터미널, 6월 고양 화정터미널, 지난달에는 서울 상봉터미널까지 총 4곳이 폐업했다.

평택 송탄터미널은 다음달 1일 부로 문을 닫는다. 1989년 개장한 송탄터미널은 2019년만 해도 하루 평균 이용객이 1200여명이었지만, 올해는 100여명에 그치는 실정이다. 경영 악화에 빠진 송탄터미널 운영사는 결국 폐업을 결정했고, 평택시는 터미널 인근에 정류소를 설치해 이용객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터미널이 폐업하는 주요 원인은 타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꾸준하게 인프라가 공급되고 있는 철도, 수요가 높아진 항공과 달리 버스 이용도는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터미널의 수익은 매표 수수료와 상가 임대료 2가지뿐이다. 하지만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매표가 감소하고, 상권 역시 축소되면서 입점한 상가들이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2019년 기준 1750억원이었던 전국 터미널 매표수입은 올해 기준 1220억원으로 500억원가량이 뚝 떨어졌다.

더욱이 현재 운영중인 전국 터미널 중에서 군(郡) 지역에 있는 터미널은 157곳인데, 이 중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에 있는 곳은 97곳이어서 이용객 감소에 따른 터미널 폐업은 도미노처럼 이어질 전망이다.


"버스 의존 줄이고 터미널 상권 확대해야…공영 전환도 필요"

버스 하차장이었던 구역이 현재는 비어 있다. 정성욱 기자

때문에 업계에선 버스 운송업 의존도를 줄이고, 터미널을 자체적인 소비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버스 이용객이 줄어들더라도 터미널 입점 업종을 확대해 터미널을 하나의 상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터미널사업자협회 관계자는 "터미널의 사업구조는 매표수수료와 상가 임대료여서 버스 운송업에 100%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버스 이용객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터미널을 찾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행법상 터미널은 도시계획시설에 해당되는데, 여기에는 식당이나 매점, 다방, 약국 등 일부 업종만 입점이 가능하다. 때문에 업계에선 보다 다양한 업종이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와 함께 공영터미널 도입도 제안한다. 민간이 터미널을 운영하는 현행 체제 대신, 정부가 공공시설로서 터미널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스 역시 주요 운송수단인 만큼 터미널이 정부의 관리 체제에 들어와야 한다는 취지다.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김진유 교수는 "버스터미널은 시민들의 발이자, 중요한 공공시설"이라며 "업종 제한을 풀어서라도 수익이 보장되는 업종을 유치해 터미널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영국의 경우 전체 버스터미널 600곳 중 400곳이 공영"이라면서 "우리 역시 정부에서 터미널을 공영으로 전환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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