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끝나지 않는 경기 침체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며 양극화가 심화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은 무고한 희생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국가간 보호무역에 의한 갈등과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는 민생보다 자신들의 진영에 견고한 성을 쌓는 데 치중하면서 시민의 균등한 삶과 제3세계의 굶주림과 난민, 폭력의 자행에 대한 관심은 흐릿해지고 있다.
역사학자 윌리 톰슨은 그의 저서 '20세기 이데올로기'에서 20세기는 세계대전, 러시아혁명, 대공황, 냉전, 정보화혁명 등 인류가 가장 큰 규모의 발전과 동시에 가장 끔찍한 테러와 대량 학살을 경험한 시대였다고 지적했다. 이들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정치적 도구로 쓰였던 배타적 민족주의가 오늘날 21세기 다시 득세하며 평화가 품은 다문화와 다양성, 이를 포용하는 공동체의식과 관용은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그의 저서 '자유주의와 그 불만'에서 20세기를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한 주장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는 엄밀하게 말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라기보다는 우선적으로 자유주의 제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더욱이 경제성장과 근대 세계의 번영에 훨씬 더 연관된 것은 민주주의라기보다 자유주의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해가 있는데, 19세기부터 산업혁명과 자유무역, 프랑스 혁명 등의 물결을 타며 세계사의 주도적 사상으로 급부상한 개인과 개별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관용(tolerance·톨레랑스)를 주요 가치로 삼는 고전적 민주주의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부연했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가 보장한 경제적 자유를 극단적으로 확장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전 지구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만들어냈고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폭탄을 맞았다. 이후 세계는 희미해진 민족주의 틈새를 파고들어 자유주의에 대한 교조화로 탄생한 신자유주의가 남긴 생채기로 인해 여전히 우리 사회와 전 지구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은 모두 자유민주주의가 되기 이전에 민족공동체였다. 반면 미국은 많은 이들이 강조해왔다시피 하나의 국민공동체가 되기 이전에 국가였다"고 진단한다.
혈연과 언어, 민족적 국가가 아니라 어떠한 가치에 기반한 국가는 다양성 앞에 어떤 가치로 국민을 묶어야 하는지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곧 이는 국가로서 다양한 개인을 묶는, 때로는 폭력을 수반하거나 다양한 사상의 날카로운 대립이 충돌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자유주의의 급진성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이에 대항해 후쿠야마 교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급진적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와 다른 관용을 바탕으로 한 고전적 자유주의(liberalism)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17~19세기 서유럽을 중심으로 나타난 정치 사상으로, 천부인권과 경제적 자유에 기반한 법치주의 국가를 추구하는 자유주의 사상이다. 이를 대표하는 존 로크의 사상은 몽테스키외, 볼테르와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이 계승했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자들에 의해 그 사상이 발전해, 근현대 민주주의 국가 탄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시대 유럽으로 돌아가 보자.
어쩌면 250년 전의 광신적인 종교의 편협함과 절대왕정이 도사리고 있던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반복된 시도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관용, 톨레랑스는 무엇인가. 18세기 초 절대왕정 시대 권위주의를 대표했던 정치와 종교에 대항한 자유, 평등, 박애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시민 프랑스'의 정신이자 이념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계몽 사상가인 볼테르는 다양성을 수용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허용함으로써 사회적 조화를 추구했다.
존 로크의 책 '관용에 관한 편지'가 영향을 끼쳤다. 1762년 개신교도에 대한 왜곡된 재판 사건으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장 칼라스 사건'을 접한 볼테르가 3년 뒤 재판부를 탄핵하며 경종을 울린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가 탄생한 계기가 된다.
관용은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서로 다른 배경, 신념,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다. 다양성이 있는 사회에서 관용은 상호 이해와 조화를 촉진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형성하지만 권위주의는 특정한 가치나 신념을 강요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억압한다.
볼테르가 한 말로 잘못 알려져 있는 말 중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할 수 없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권리를 지키는 데는 목숨을 걸 수 있다"가 있다. 실은 '볼테르와 친구들'이라는 책을 쓴 이블린 홀이 볼테르의 사상을 요약해 표현한 말로 다양성과 관용을 대표하는 명언이다.
이는 볼테르가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후배 철학자 엘비시우스가 쓴 책 '마음에 대하여'를 보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비판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박해는 온당치 않다며 "나는 그가 쓴 글이 싫다. 하지만 그가 계속 쓸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목숨을 걸 수 있다"고 쓴 데서 유래했다.
다시 우리에게 눈을 돌려보자.
한국과 동아시아가 지닌 '압축적 근대성'의 다면성을 연구해 온 장경섭 서울대 교수는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상황을 진단하며 빈곤, 기근, 정치적 균열, 사회 갈등, 혼란 등으로 점철된 탈식민기 환경만큼이나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장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적 정치, 행정, 기술·과학, 산업 엘리트 등 신자유주의 기득권 세력이 이 같은 압축적 개발과 근대화를 위한 확장 정책을 옹호하고 강화하며 이를 재연장시키려 한다고 꼬집는다.
이는 자원 고갈, 환경 파괴, 소득 불평등, 문화·경제·사회 구조의 획일화는 물론 특정한 이념이나 권력이 지배적인 지표를 만들어내고 문화적 다양성이 손실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관용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수용함으로써 권위주의와 획일화되는 흐름에 비판적 시각과 대안적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상호 양해와 공존, 협력을 통해 창의적이고 조화로운 사회로 가는 열쇠이기도 하다.
급진적 신자유주의와 결이 다른 관용을 바탕으로 한 고전적 자유주의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는 뭘까. 관용이 사라진 시대를 비판하는 존 로크를 이은 볼테르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깊숙히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세기 이데올로기
윌리 톰슨 지음|전경훈 옮김|산처럼|584쪽
■자유주의와 그 불만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이상원 옮김|아르테|264쪽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
볼테르 지음|김계영 옮김|옴므리브르|288쪽
■통치론
존 로크 지음|강정인·문지영 옮김|까치|284쪽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
장경섭 지음 | 박홍경 옮김 | 문학사상 | 3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