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죽음의 바다' 이순신이 '난중일기'에 남긴 고뇌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이자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다룬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흥행하면서 다시금 노량해전과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잘 알려졌듯이 '노량해전'은 임진왜란 중 바다에서의 마지막 싸움이다. 이순신이 승리와 함께 전사한 해전이기도 하다.
 
1597년 재침한 왜군은 그 해 9월 명량해전에서 패배한 데 이어 육전에서도 계속 고전했다. 다음 해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하자 왜군은 순천 등지로 집결하면서 철수작전을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과 함께 1598년 9월 고금도 수군 진영을 떠나 노량(경남 남해도와 하동 사이 해협) 근해에 이르렀다. 명나라 육군장 유정과 수륙합동작전을 펴 왜교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 고니시의 부대를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그해 11월 18일 밤, 이순신의 예견대로 노량 수로와 왜교 등지에는 500여척의 왜선이 집결해 협공할 위세를 보였다. 200여척의 조·명 연합수군을 거느린 이순신은 "이 원수만 무찌른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此讎若除死則無憾)"고 하늘에 빌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19일 새벽, 싸움은 막바지에 이르고 이순신과 진린은 서로 위급함을 구하면서 전투를 독려했다. 왜의 수군 선박 200여척이 불에 타 침몰하거나 파손됐고, 100여척이 이순신함대에 나포됐으며 나머지 패잔선들이 관음포 쪽으로 겨우 달아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까지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심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난중일기'에는 '노량: 죽음의 바다'에도 등장하듯이 셋째 아들 이면(극 중 여진구)의 죽음에 슬퍼하고, 기나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고뇌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담겼다. 이에 '노량' 관객들을 위해 '난중일기'(김문정 옮김 | 더 스토리) 속 영화와 관련된 나흘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1597년(선조 30) 10월 2일 맑음

아들 회가 집안사람들의 생사를 알아볼 일로 배를 타고 올라갔는데 무사히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내 심정을 어찌 다 말하랴. 혼자 배 위에 앉아있으니 마음속이 매우 복잡했다.
 

1597년 10월 14일 맑음

(중략)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에서 온 편지를 전했다. 봉한 것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뜯고 둘째 아들 열의 글씨를 보니, 겉에 통곡(慟哭)이라는 두 글자가 씌어 있어서 면이 전사한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간담이 떨려 목 놓아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만 같다. 내가 죽고 너가 사는 것이 올바른 이치인데, 너가 죽고 내가 살다니. 이것은 이치가 잘못된 것이다. (중략) 아직 목숨은 남아있지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오직 울부짖을 뿐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일 년처럼 길구나. 이날 밤 9시경에 비가 내렸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1597년 12월 30일

눈보라가 몹시 휘날림. 배 조방장이 와서 만났다. 여러 장수들도 모두 와서 보았는데 평산포 만호와 영등포 만호 정응두는 오지 않았다. 부찰사 홍이상의 군관이 편지를 갖고 왔다. 오늘밤이 1년이 끝나는 마지막 밤이라 비통한 마음이 더욱 깊다.
 

1598년(선조 31) 11월 17일

어제 복병장 발포 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이 왜적의 중간 배 1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했다. 왜적은 언덕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서 달아나 버렸다.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와서 보고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난중일기'에 없는 1598년 11월 19일 그날

이순신은 19일 오전 관음포로 도주하는 마지막 왜군을 추격하던 중 총환을 맞고 쓰러지면서 "戰方急 愼勿言我死"(전방급 신물언아사·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 말하지 말라)는, 지금까지도 모두가 가슴에 품은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이 해전에서 명나라 장수 등자룡과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등이 전사했다. 한편 순천 왜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고니시의 군사들은 남해도 남쪽을 지나 퇴각해 시마쓰의 군과 함께 부산에 집결, 철수했다. 노량해전을 끝으로 7년에 걸친 전쟁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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