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한국경제 뇌관 부상한 '가계대출'…시한폭탄 터지나 ②집값 추락 막았지만 경기불안…부동산PF 부실화 공포 '여전' ③낙관론 펼치다 큰 코 다친다··저성장 늪 빠지지 않으려면 |
'상저하고'(상반기에는 어렵다가 하반기부터 경기가 풀린다)를 강조해왔던 윤석열 정부의 경제 기조가 최근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거시 경제 지표들은 조금씩 호전되고 있지만 속도가 더디고, 민생 경제는 꽁꽁 얼어붙어있기 때문이다. 물가는 잡히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도 줄었다. 낙관론을 펼치던 정부도 결국 기조를 점차 트는 모습이다.
내년에는 올해처럼 낙관론을 펼치기보다는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이 요구된다. 특히 저출산 문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경제의 구조개혁을 촉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저하고' 슬그머니 접는 정부, 2기 경제팀 민생경제 회복 강조
정부의 '상저하고'의 언급이 줄어든 것은 지난달 부터다. 19일 열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기조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 후보자는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고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지표가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라면서도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부문간 회복속도 차이 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아직 회복의 온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한 '1기 경제팀'은 '상저하고'를 내세웠지만 '2기 경제팀'은 출범을 앞두고 민생 경제 어려움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의 상황은 수출 부진과 소비 부진으로 요약된다. 수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경기는 최악의 시간을 지나 플러스 전환을 예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소비여력이 없는 점도 경기를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정부가 품목별 담당자까지 둬가면서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썼지만, 여전히 3%대 물가 상승률을 보여 민생 경제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주문처럼 외쳤던 '상저하고'와 민생 경제의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2기 경제팀도 어쩔수없이 방향을 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보다 내년 세계 경제 안좋고 하반기 더 어려워" 한국 2%대 성장 달성 못할 수도
문제는 내년에도 경기 회복세가 더디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상반기 중에 침체하거나 다소 부진할 가능성이 높아 수출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국내적으로는 금리가 여전히 높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이 떨어져 경기 흐름이 예상보다 안좋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내년 주요국들의 경기가 올해보다 부진하고,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오히려 안좋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안성배 대외경제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미국의 경제가 고금리 여파에도 현재까지는 좋은 편이지만, 내년 하반기에는 경기 둔화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며 "상반기보다는 하반기의 국제 경기의 흐름이 더 안좋을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고 설명했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국내외 기관들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에서 2% 초반대로 잡고 있지만, 대외 경제의 불확실성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1%대의 저성장을 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원 실장도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1%대 성장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세계 최악 출산율에 한국 경제 곧 휘청, 획기적인 실마리 찾아야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는 한국 경제의 생산성과 잠재성장률이 동시에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다. 올해 12월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까지 떨어질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저출산의 추세가 세계에서 가장 최악으로 치닫으면서 생산성 자체가 줄고 있고, 이는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출산율을 끌어올리지 못할 경우, 2050년에는 성장률이 0% 이하로 추락하고 2070년 총인구가 4천만명을 밑돌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왔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지난 3일 발표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출산율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았고, 출산율 하락 속도는 가장 빨랐다.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0.3%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46년 일본을 넘어 OECD 회원국 중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큰 나라가 된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추세성장률이 0% 이하로 낮아질 가능성은 2050년대 전체 평균으로 68%에 이른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큰 과오로 꼽히는 저출산 문제를 이번 윤석열 정부도 이대로 방치할 경우에, 국가의 경제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이다.
거시 경제 지표와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획기적인 안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단기적인 경기 부양 못지 않게, 인구문제 대응 등 구조 개혁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