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러시아 공장을 매각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가동을 멈춘지 1년 9개월 만이다. 공장을 매각하더라도 현대차가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건 아니다. 현지 판매법인 등 사업을 계속해 이어가면서 재진출 가능성도 열어뒀다.
현대차는 19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러시아 공장(HMMR)의 지분 매각 안건을 승인했다. 지난 2020년 인수한 제너럴모터스(GM)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도 함께 매각한다.
매각 대상은 러시아 현지 업체인 '아트 파이낸스'(Art-Finance)다. 현대차는 현재 아트 파이낸스와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놓고 협상 중이다. 조건에는 매각 이후 2년 이내에 되살 수 있는 권리인 '바이백'을 포함했다. 매각 금액은 1만루블(약 14만5000원)로 알려졌다. 가동 중단으로 인한 손실을 덜어내는 차원에서 매각하다 보니 실제 가치보다는 상징적인 값을 매겼다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일본 자동차 기업 닛산도 바이백 조건을 넣으면서 공장을 포함한 러시아 내 자산을 1유로(약 1400원)에 매각했다. 프랑스 르노도 지난해 5월 모스크바 공장을 2루블(약 29원)에 모스크바시로 넘겼다.
현대차의 공장 매각이 곧 러시아 시장에서의 철수를 뜻하는 건 아니다. 계약 내용에 바이백 조건이 있는 만큼 추후 공장을 재매입할 수 있다. 현지 판매법인도 유지하고, 기존 판매된 차량의 애프터서비스(AS)도 지속한다.
현대차는 옛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 들어 러시아 수출을 시작했다. 지난 2007년 현지 법인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러시아 시장에 진출했고, 정몽구 명예회장 주도로 2010년 6번째 해외 생산 거점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준공했다. 연산 20만대 규모로 이듬해인 2011년 현지 생산에 들어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러시아 기후 특성을 고려한 현지 맞춤형 소형차 쏠라리스와 해외시장 모델인 소형 SUV 크레타, 기아 리오 등 인기 차종을 생산하며 판매 호조를 보였다. 호실적에 힘입어 지난 2020년에는 연간 10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GM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도 인수했다.
다만 현대차가 2년 이내 러시아 시장으로 재진출했을 때 이같은 호실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현대차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체 업체 대부분이 급격한 판매량 감소에 일찌감치 러시아 현지에서 철수했다.
유럽비즈니스협회에 따르면 현대차의 러시아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 2892대에서 올해 8월 6대로 곤두박질쳤다. 지난 2021년 8월 시장 점유율 27.5%로 러시아 현지 자동차 판매 1위를 차지한 때와는 딴판이다. 현대차·기아는 같은해 러시아에서 약 37만8000대를 팔았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떠난 빈자리를 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꿰찬 점도 전망을 어둡게 한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아브토스타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까지 7%에 불과했던 중국 자동차 회사들의 점유율은 현재 7배 이상으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은 1.4%로 떨어졌다.
현대차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대 러시아 제재로 자동차 부품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같은해 3월부터 현지 공장 가동을 멈췄다. 공장의 장부가액은 2873억원에 달한다. 러시아 정부의 방침에 따라 현대차가 향후 공장을 되사기로 결정하면 이때는 매각가가 아닌 바이백 시점의 시세로 매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