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낙태약'…美대선 흔들 '변수'로 떠올라[워싱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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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미 연방대법원이 50년만에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을 때 보수층은 환호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보수 성향 판사 3명을 잇달아 연방대법관으로 보내면서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을 만든 것이 주효했다며 축배를 들었다. 
 
이들은 '판례 폐기'를 계기로 우파 세력 결집은 물론,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확산시켜 중도층의 지지마저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물론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클 줄은 아마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상원 1/3, 하원 전체, 30여곳의 주지사 선거) 결과는 '후폭풍'의 서막이었다. 
 
당시 '공화당 압승'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민주당이 하원선거에서는 공화당에 밀렸으나, 상원과 주지사 선거에서는 선거 전보다 더 많은 의원과 주지사를 배출했다.
 
이를 두고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인정 판결 폐기가 조용히 있던 민주당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결집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여성 유권자들의 민주당 지지세가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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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을 1년 앞두고 벌어진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와 오하이오 주민투표, 켄터키 주지사 선거는 '후폭풍'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
 
우선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에서 미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했다. 버지니아주는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인정 판결 폐기 이후에도 남부 주 가운데 유일하게 '낙태 금지'를 법제화하지 않은 곳이었다. 
 
글렌 영킨 버지니아주지사(공화)는 이번 선거 이후 '낙태 금지'에 드라이브를 걸 생각이었으나, 물거품이 됐다. 
 
오하이오 주민투표에서는 주 헌법에 낙태 권리를 명시한 개헌안이 주민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아 통과됐고, 여성의 낙태권 보장을 역설했던 앤디 베시어 켄터키 주지사(민주)는 재선에 무난히 성공했다. 
 
말 그대로 '낙태권이 승리한 셈'이었다. 
 
마지막 '후폭풍'은 내년 대선에서 휘몰아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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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 연방대법원이 먹는 낙태약 '미페프리스톤'의 판매 문제와 관련한 검토에 들어갔고, 결론은 대선 한복판인 내년 6월말쯤 나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연방항소법원이 미페프리스톤의 사용을 기존 '임신 10주 이내'에서 '7주 이내'로 제한하고 원격 처방 및 우편 배송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것에 미 법무부가 상고하면서, 연방대법원에게로 공이 넘어간 것이다. 
 
미국에서 이뤄지는 낙태의 절반 정도가 미페프르스톤에 의존할 정도여서, 연방대법원의 결론이 여성들에게 미칠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지에 이어 낙태약 판매·사용에까지 재갈을 물린다면, 낙태 문제가 블랙홀처럼 다른 이슈들을 빨아들여 대선판 자체를 뒤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뒤지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호재임이 분명하다. 
 
백악관은 이번 낙태약 판매 문제와 관련해 "미국 전역에서 우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목도하고 있다"며 여성들편에 섰다. 
 
반면 3차례나 진행된 공화당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낙태'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한 후보는 없었다. 
 
니키 헤일리 후보가 "'낙태권 이슈'에 대한 공화당의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게 전부일 정도다. 
 
토론회에 불참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도 '낙태'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낙태약'이라는 주사위는 던져졌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미 대선판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수싸움'이 벌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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