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15일(한국 시각) 구단 공식 SNS를 통해 이정후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구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정후와 계약 기간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약 1462억 원)에 계약했다"고 전했다.
2017년 넥센(현 키움)의 1차 지명을 받고 KBO 리그에 데뷔한 이정후는 현역 최고의 타자로 불리며 놀라운 타격감을 뽐냈다. 올 시즌을 마친 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빅 리그 진출을 노린 그는 일찌감치 다수의 MLB 구단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정후는 KBO 리그 통산 7시즌 동안 884경기 타율 3할4푼 1181안타 65홈런 515타점 581득점 69도루 출루율 4할7리 장타율 4할9푼1리로 활약했다. 특히 지난해 KBO 리그 MVP(최우수 선수)와 타격 5관왕(타율·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을 거머쥐며 큰 기대를 모았다.
이후 이정후에게 한국인 역대 FA(자유계약선수) 계약 규모 2위에 달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1위 계약은 추신수(SSG)가 2014년 텍사스와 맺은 7년 1억 3000만 달러다.
이정후의 계약에는 4시즌을 뛴 뒤 FA가 될 수 있는 옵트아웃 조항도 추가됐다. 이는 선배 김하성이 이정후에게 조언한 내용이었다. 김하성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MLB 계약에서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마이너리그 거부권보다 옵트아웃을 (계약 조항에) 넣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옵트아웃은 이정후가 2027시즌을 마친 뒤 자신의 활약에 따라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으로 이적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옵트아웃을 선언하지 않아도 200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이 보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 영입에 공을 들인 이유가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외야진 뎁스가 얇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특히 주전 중견수로 내세울 만한 선수가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 시즌 루이 마토스가 중견수로 가장 많은 76경기를 소화했으나, 타율 2할5푼 2홈런 14타점에 그쳤다. 브라이스 존슨이 30경기, 웨이드 메클러가 20경기에 중견수로 출전했지만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를 영입하자 'MLB 닷컴'은 "이정후의 합류는 샌프란시스코의 외야수 조합을 더 혼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후 영입을 통해 외야진을 보강한 샌프란시스코다.
이정후는 입단식에서 선배 김하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김)하성이 형이 소식을 듣고 좋은 구단에 가서 축하한다고 말했다"면서 "'좋은 감독님 밑에서 야구를 하게 돼 정말 잘 됐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해주셨다"고 밝혔다.
김하성이 말한 '좋은 감독님'은 자신의 성장을 이끈 밥 멜빈 감독이다. 멜빈 감독은 김하성이 빅 리그 2년 차를 맞은 지난해 샌디에이고에 부임해 올해까지 팀을 지휘했다.
멜빈 감독은 샌디에이고에서 2년간 171승 153패를 기록했다. 처음 지휘봉을 잡은 지난해 내셔널리그(NL) 서부 지구 라이벌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제압하고 NL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올해는 82승 80패 승률 5할6리를 기록, NL 서부 지구 3위에 머물며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샌디에이고와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멜빈 감독은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샌프란시스코 감독 면접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중에는 A.J 프렐러 샌디에이고 단장과 불화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올 시즌 79승 83패 승률 4할8푼8리로 NL 서부 지구 4위에 머물렀다.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샌프란시스코는 2021년부터 팀을 이끈 게이브 케플러 감독을 경질하고 멜빈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올해는 보스턴의 간판 유격수 젠더 보가츠가 영입됐지만 김하성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2루수로 자리를 옮긴 그는 여전히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였고, 3루수와 유격수까지 오가는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을 뽐냈다. 그 결과 아시아 내야수 최초로 NL 유틸리티 부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김하성은 "골드 글러브를 받고 가장 기억에 남은 축하 인사는 멜빈 감독님이었다"면서 "'내가 만난 선수 중에 네가 정말 손에 꼽을 만한 선수였다. 함께해서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멜빈 감독이 팀을 떠나자 감사함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멜빈 감독은 김하성 외에도 아시아권 선수들과 인연이 깊다. 앞서 한국인 메이저 리거 김병현과 일본 출신 스즈키 이키로, 노모 히데오 등을 지도한 바 있다.
'MLB 네트워크'는 이정후가 1번 타자 중견수를 맡고,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 혹은 윌머 플로레스와 테이블 세터를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ESPN'은 "이정후는 MLB 올스타에 선발될 만한 재능을 갖췄다"면서 "김하성보다 빠르게 빅 리그에 적응해 평균 이상의 출루율과 3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고 빅 리그에 도전하는 이정후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면서 "새로운 투수들과 환경, 야구장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을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빅 리그에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이정후는 "나는 어리다.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은 만큼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팀에 항상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이를 악물었다.
김하성의 샌디에이고와 NL 서부 지구 우승을 다툴 이정후는 "하성이 형은 한국에서 팀메이트로 뛰었고, 내게는 정신적 지주인 형이었다"면서 "한국에 있을 때부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 뛰었던 시즌을 뒤로하고 맞대결을 갖게 돼 신기하고 설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