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백두혈통 3대의 권력세습이 이뤄진 것처럼, 여성들에게 최고귀감이 되는 모델도 대를 이어왔다.
지난 1967년을 기점으로 김일성의 권력이 절대화되면서 북한여성의 최고모델은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었다. 김일성이라는 '최고의 혁명가'를 키워냈으니 말이다.
70년대 중반 김정일이 후계자로 정해진 뒤에는 김일성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주체형의 혁명투사"로 선전됐다.
'조선의 어머니'이자 '위대한 여성혁명가'로서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백두 3대장군' 중 한 명으로 우상화된 사람이 바로 김정숙였다.
그런데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이처럼 여성들의 최고귀감을 이어가는 구도에 차질이 생겼다.
백두혈통 정통성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는 재일동포 출신 생모 고영희를 '혁명적 어머니'의 최고모델로 부각시킬 수 없고, 그렇다고 아직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인 리설주를 내세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3일과 4일 북한에서 열린 제5차 전국 어머니대회는 이런 딜레마를 잘 보여준 대회로 평가된다.
일단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에 열린 4차 어머니 대회까지만 해도 김정숙의 위상은 건재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이 일제히 김정숙을 찬양했다.
'김정은 혁명사상'에 앞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제창했던 시기였던 만큼 '혁명적 어머니'의 최고귀감은 여전히 김정숙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5차 대회에서 김정숙의 이름은 사라졌다. 어머니대회 소식을 전하는 북한 매체의 보도 어디에도 김정숙의 이름이 없었다.
김정은이 집권한지 이제 만 12년이 다 돼가는 상황에서 선대의 후광에 더는 기댈 수 없고, 기대지도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은미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재일교포 출신인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를 공식적으로 내세워 우상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정숙 우상화 담론도 함께 사라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제5차 전국 어머니대회는 선대 수령들의 후광에서 벗어나 '어버이 수령'의 지위를 스스로 내세워 독자적 김정은 수령체제를 공고화하는 정치행사"라고 분석했다.
최고귀감의 '혁명적 어머니' 모델을 콕 집어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런 모범을 김정은 시대 일반 어머니들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대회 마지막 날 행사에서 20명의 참가여성들에게 새로 제정된 '공산주의어머니 영예상'과 선물 증서, 금반지를 수여했다.
여기서 금반지는 일반적인 선물일 수도 있지만, 김정은 시대 어머니들의 역할을 당부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일성은 지난 30년대 항일무장투쟁 과정에서 공을 세운 김정숙에게 금반지를 선물했고, 이후 이 반지를 평양의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했다는 것이 북한의 설명이다.
정은미 실장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조선 어머니'의 상징 김정숙에 김일성이 선물했다는 것이 바로 금반지"라며, "이번 대회에서 모범 어머니들에게 선물한 금반지도 이런 상징적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은 이번 대회 폐막 연설에서 "어떤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공부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언어예절을 비롯한 예의와 도덕에 대한 교양은 소홀히 하거나 우리 식이 아닌 언행을 뻔히 보면서도 내버려두고 있으며 또 어떤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별난 옷을 입히면서 남보다 특별하게 내세워야 어머니 구실을 잘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며, "최근에 사회적으로 이색적인 현상들과의 투쟁을 강화하고 있는데 어머니들이 적극 합세하여야 그러한 현상을 완전히 소거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은 최근 한류 등 비사회주의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평양문화어보호법 등 각종 통제법안을 제정해 청년세대를 압박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법적 통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어머니대회를 열어 '가정에서부터의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