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그룹 낯선 사람들로 데뷔한 가수 이소라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멎었던 공연을 4년 만에 재개한 그는 '소라에게'라는 30주년 기념 단독 콘서트로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 동안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관객을 만났다. 가사를 쓰고, 곡을 내고, 노래해 온 시간이 쌓여, '서른 번째 그녀의 계절'이 가능했다.
10일 오후 5시 5분 시작한 마지막 날 공연에서, 노래하는 이소라를 4년 만에 만났다. 이승환(피아노), 홍준호와 임헌일(기타), 이상민(드럼), 최인성(베이스)까지 세션 연주자 4명이 어둠을 뚫고 등장했고, 무대 한가운데에 이소라가 앉아 입을 뗐다. 첫 곡은 기타 연주가 인상적이었던 정규 8집 수록곡 '운 듯'이었다.
맑은소리가 돋보이는 피아노가 들려주는 다음 곡은 퍽 익숙했다. 두 번째 곡은 이소라의 대표곡 '난 행복해'였다. 제목과는 달리, "다음번엔 나 같은 여자 만나지 마 행복해야 해"라고 당부하는 이별 노래다. '처음 느낌 그대로' 정도를 빼면, '너무 다른 널 보면서' '제발' '별' '티어스'(Tears) 등 이별 혹은 아픈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가 죽 이어졌다.
거의 모든 콘서트에서 사진 촬영과 녹화, 녹음은 금지돼 있지만 전문 장비를 대동한 경우 외에 휴대전화로 하는 행위는 용인되는 게 현실이다. '소라에게'에선 '촬영 금지'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졌다. 가수를 향해 있는 무수한 휴대전화 액정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 개인 멘트가 거의 없어 이로 인한 불편이 극도로 줄어든 것, 이 두 가지 덕분에 공연 관람이 몹시 '쾌적했다'.
짧은 말로도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 이소라가 준비한 "몇 안 되는 가볍고 밝은 노래"는 산뜻한 기타 연주와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데이트', 보사노바 같이 들렸던 '랑데뷰'(Rendez-Vous), 포근한 감성이 물씬 풍긴 '해피 크리스마스'(Happy Christmas), 신나게 달려가는 기타 연주로 사랑의 설렘을 표현한 '첫사랑'이었다.
소속사 에르타알레 엔터테인먼트는 공연을 앞두고 "매번 숨고 싶어 했던 자신을 끊임없이 무대 위로 불러내 준 팬들의 사연과 신청곡들로 세트 리스트를 채워 고마움을 전할 예정"이라고 귀띔한 바 있다. 공연 중간, 그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영상과 음성이 등장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1회 마지막 곡으로 부른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는 이날 직접 부르기도 했다.
부엌, 방, 거실, 차 안, 경비실, 공장 등 누군가의 일터 혹은 쉼터에 켜진 라디오가 영상으로 나왔다. 이소라가 사연을 소개하고 그에 맞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공연은 조금 다르게 진행됐다. 가수 이문세가 깜짝 손님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문세 출연은 이소라에게 사전 전달되지 않은 내용이어서, 이소라는 당황스러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문세가 "소라씨가 관객 여러분보다 더 당황한 것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으나, 이소라는 "어쩌지? 저 여기 앉아 있겠다. 말씀 편하게 하라"라고 오히려 손님인 듯 굴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도 "너무 어렵다"면서도 "너무 행복하다"라고 고백했다.
나이도, 데뷔 햇수도 꼭 10년 차이가 난다는 이문세는 올해 이소라 공연에서 더 많은 관객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언급하기도 했다. "단순히 지금의 히트곡을 듣고 있다, 위안이 된다"에 그치지 않고, "그냥 같이 함께 살아갔구나, 함께 이 험하고 어려운 세상을 같이 이렇게 짊어지고 이겨내고 있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문세의 말을 가장 실감한 곡이 있었다. 바로 '트랙 3'(Track 3)이었다. 밴드 멤버와 함께 부른 이 노래는 이소라와 이한철이 함께 가사를 썼고 이한철이 작곡했다. 정규 7집에는 이소라 혼자 부른 버전인 '트랙 3'뿐 아니라, 이 노래를 앨범에 참여한 모든 작곡가와 엔지니어 등 여럿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부른 '트랙 11'도 담겨 있다. 수수하면서 담백하게 사랑을 노래하는 무대를 보며, 절로 '트랙 11'을 떠올렸다.
"사랑이 그대 마음에 차지 않을 땐 속상해하지 말아요/미움이 그댈 화나게 해도 짜증 내지 마세요/사랑은 언제나 그곳에/우리가 가야 하는 곳/사랑은 언제나 그곳에/love is always part of me" ('트랙 3' 中)
노래로만 '사랑'을 말한 건 아니었다. 이소라는 좀처럼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밝혔고, 올해도 그랬다고 했지만 '그래도' 관객 앞에서 노래하면 좋다고 털어놨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으로 같은 장소에 모여 있는 것 그러면 싸울 일도 없고 마음이 하나가 돼요. 정말 노래하는 사람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박수를 쳐 주고, 노래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노래해요. 그런 그 순간순간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런 시간이에요. 잊혀지고 싶지 않아요. 잊지 말고 다음에 또 이렇게 공연하게 되면 어딘가에서 보게 되면 저 생각해 주세요. 아는 척 해주세요."
"오래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잘하는 것도 중요한데 오래, 끝까지 함께, 곁에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라고 힘주어 말한 이소라는 '바람이 분다'와 '봄'을 부른 후, 앙코르곡으로 '청혼'으로 공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