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해병대 훈련 논란' 대한체육회의 위험한 해명 "올림픽은 전쟁"

올림픽 헌장, 강령에 반하는 논리로 해병대 훈련 당위성 강조
부정적 여론에도 7일 포항 해병대 현장 답사 등 훈련 계획 강행
'삼청교육대 부활?' SNS 등에 시민 조롱, 비난 목소리 봇물
체육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최소화 하겠다" 해명

지난 2019년 경상북도 포항시 해병대 1사단 훈련장에서 펜싱 국가대표 선수단 소속 선수들이 공수훈련을 받고 있다. 자료사진

"어떻게 이런 입장을, 국방부 산하 기관인가요?"

대한체육회가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해병대 훈련 계획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체육회의 선수 훈련 기획 부서 간부 등은 7일 경상북도 포항의 해병대 1사단에 현장 답사를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시대에 역행하는 설화(說話)가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특히 체육회 선수 훈련 기획 부서 간부의 관련 입장 표명도 논란이다. 이 간부는 이날 CBS노컷뉴스의 관련 취재에 파리올림픽을 '전쟁'이라고 표현하며 해병대 훈련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체육회 A 간부는 "파리올림픽 같은 대규모 이벤트는 국가 대항전이기 때문에 총만 안 들었지 전쟁이다. 그래서 (해병대 훈련을 통해) 국가관이나 국가에 대한 중요성, 국가대표의 자긍심, 이런 쪽에 대해 정신 교육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올림픽이 전쟁이기 때문에 (참전을 위해서는) 해병대 훈련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같은 A 간부의 입장은 올림픽 헌장과 강령에 정면 배치된다.

올림픽 헌장은 기본 원칙 1조에서 '올림픽 운동의 목적은 이해 관계를 떠난 우호적인 경기 대회에 세계의 경기자를 모이게 함으로써 인류 평화의 유지와 인류애에 공헌 하는 데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올림픽 강령에서는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한체육회 "선수 경기력이 저하돼 반등 계기 만들기 위함"


지난 2019년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 훈련장에서 펜싱 국가대표 선수단 소속 선수들이 공수훈련을 받고 있다. 자료사진

체육회는 또 해병대 훈련을 시행하되, 국민 정서에 반하는 프로그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A 간부는 "(해병대 훈련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체육회 역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선수 부상이다. 부상 없이 '원 팀 코리아'라는 뜻을 모을 수 있는 이벤트로 봐달라. 헬기 레펠 같은 훈련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선수들을) 육체적으로 괴롭혀서 뭘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400명 되는 인원을 모아서 할 수 있으나 매일 훈련하는 장소에서 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전제했다. A간부는 "양궁이나 펜싱 등 개별 종목들이 연말, 연초에 해병대 훈련을 포함한 일출봉 훈련 등등의 퍼포먼스를 한다"면서 "파리올림픽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이번에 전체 선수단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와 함께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간부는 "국민들이 걱정하는 만큼 선수들의 사기나 경기력이 좀 많이 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등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뜻을 모아보자는 취지로 이해해 달라. 체육회 임원들도 회장을 포함해 입소한다. 종목에서도 선수들만 보내서 고생하고 오라는 것이 아니다. 각 종목의 시간 되는 임원들이 함께 입소한다"고 체육회의 입장을 밝혔다.

"바닷물에서 파이팅 외치고 사진 찍어 뉴스 홍보 하려는 발상"


지난 2019년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 훈련장에서 펜싱 국가대표 선수단 소속 선수들이 공수훈련을 받은 후 정비하는 모습. 연합뉴스

체육회가 국가대표 선수들의 해병대 입소를 공식화하고 있는 가운데,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등에는 시민들의 조롱,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페이스북, 블로그 등에는 사회 지도층과 유명인, 일반 시민까지 대한체육회의 해병대 입소 계획을 성토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등록·게시되고 있다.
 
A 교수는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도쿄올림픽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3위밖에 못했다고 이 추위 속에 극기 훈련을 시키겠다고 한다"며 성적 지상 주의를 비판했다. 이어 "오로지 정신력과 투지만을 강조하던 옛날로 타임 머신을 타고 가자는 얘기다. 일방통행식으로 결정하고 강압적으로 공문을 내려 보냈다고 하니 가가 막힌다. 체육회 공문에는 가치 있는 스포츠, 같이하는 인권 존중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내가) 졌다"고 비꼬았다.
 
B 교수는 "바닷물에서 주먹 쥐며 파이팅 외치고 사진 찍어 뉴스 홍보하려고 하는 발상"이라며 "해병대 입소하면 정신력이 강화된다는 증거는 있나"라고 쏘아붙였다. 주부 C 씨는 '우리나라 국대 선수들 훈련량은 세계 최고로 알고 있다. 해병대보다 더 극한 훈련을 견뎌내는 선수들,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이러나"라고 우려했다.
 
교육 컨설팅업 종사자 D 씨는 "곧 삼청교육대도 부활하겠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몇 살인데 해병대 극기 훈련을 이런 한겨울에 실시하나. 무식한 X들"이라고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E 씨는 "차라리 메달 입상 못하면 남녀 구분 없이 36개월 군 복무를 시킨다고 하지 그러냐. 파리올림픽 역대급 성적이 벌써 기대된다"고 조롱했다.
 
청소년 지도사 F 씨는 "뭐든 정신력이 제일이라는 북한을 따라하는 따라쟁이들을 빨리 북한으로 보내 버려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간다. 왜 1등이 꼴찌를 따라가지 못해서 안달일까. 역도 영웅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님이 (해병대 훈련에) 동의한다면 당장 정치를 포기하기 바란다"고 문체부의 중재를 요구하는 취지의 글을 게시했다.
 
MZ세대인 시민 G 씨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발언을 근거로 삼으면서 "옛 방식으로 안 된다면서 해병대 훈련을 한다구? 옛의 기준이 조선 시대인가"라고 반문했다. 프리랜서 코치인 H 씨는 "선수들이 거부하라, 금메달에 환호하지 않겠다"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대한체육회 민원 게시판 링크를 등록하는 등 시민 참여를 독려했다.
 
시민 I 씨는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해병대가 아니라 심리 치료사 같은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 정신력 강화다. 최고 스포츠 강국인 미국이 심리 지원을 해병대 보내서 하나"라고 충고했다. 시민 J 씨는 "(대한체육회장이) 책임자로서 실적 압박을 받는 것은 이해하지만 (성적이 안 나온)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강구해야지 이게 웬 말이냐. 해병대는 군인을 훈련시키는 곳이지 운동 선수 양성소가 아니다"고 일갈했다.

군사 문화 잔재 비판도 제기 "전두환, 박정희,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 회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지난 10월 8일 중국 항저우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해단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항저우(중국)=황진환 기자

황교익 맛 칼럼리스트는 "전두환, 박정희, 아니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는군요"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출판사 대표인 K 씨는 '옛날 방식 훈련을 막아야 할 체육회가 앞장서서 대통령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듯하다. 메달을 못 따는 이유가 정신 무장이 안 돼서가 아니라 청소년 인구가 줄면서 운동 저변이 좁아져서 더 그렇다"고 분석했다.

블로그에도 관련 포스팅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스포츠 심리 포스팅을 하는 L 블로그는 "이게 최선인가. 우리나라도 헝그리 정신을 찾는 것은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꼰대스럽다"는 글을 게재했다. 스포츠 스토리를 게시하는 B 블로그는 '거꾸로 가는 대한체육회'라는 제목의 글에서 "대한체육회의 목적은 대표팀 역량 강화가 아닌 정신력 강화"라고 비꼬는 글을 포스팅했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간 각 종목 국가대표 400여 명이 참여하는 해병대 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 10월 8일 항저우아시안게임 폐회 전날 기자 회견에서 "내년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선수촌에 입촌하기 전에 해병대 극기 훈련을 하게 될 것이다. 저도 같이 하고 입촌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당시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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