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놓고 세계는 양분돼 있다.
미국을 위시해 대부분의 서방세계는 이스라엘 편을 드는 반면, 중국과 러시아 남미의 일부 좌파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낸다.
이념적 분화 경향이 또렷해지고 있는 최근의 세계 질서 그대로다.
그런데 이념적으로는 서방세계에 더 가까워 보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행보는 다르다.
이 나라는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휴전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사실상 하마스를 응원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세계 인권운동의 대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유명한 넬슨 만델라의 나라가 맞냐는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대표하는 남아공의 암울한 현대사를 잠시 떠올리면 이 의문은 쉽게 가신다.
만델라는 인종차별정책에 항거하면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출소한 흑인 인권운동가다.
그는 자기 나라의 인종차별정책을 철폐하기위해 국제사회와 다양한 협력과 연대를 모색했다.
마치 우리가 일제치하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 여러나라들에 도움을 청했던 때와 흡사하다.
5일 발행된 알자지라의 특집 기사에 따르면 만델라는 1990년 2월 석방된 직후 지체없이 흑인들의 정치결사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국제 관계에 속도를 내도록 힘썼다.
그러나 ANC가 해외 여러 곳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념'은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역사학자 매튜 그레이엄은 "ANC의 지원 네트워크는 냉전 시대의 분열을 넘어섰다. 그 당은 누구와도, 아무와도 대화하는 것을 매우 잘했다. 그들은 런던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지만, 카다피나 카스트로 같은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출소한지 4개월 뒤 만델라는 미국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미국도 방문했다.
당시 ABC뉴스의 유명 앵커 테드 커플은 타운홀미팅에 참석한 만델라 대통령을 향해 그가 지구촌의 독재자들과 우호관계를 맺어 온 이력을 문제 삼았다.
만델라는 지체없이 이렇게 답했다.
"일부 정치 분석가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그들의 적은 우리의 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그 나라의 투쟁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야세르 아라파트, 카다피 대령, 피델 카스트로는 우리의 투쟁을 끝까지 지지합니다. 우리의 자세는 오직 그들이 반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그들은 단지 말로만 그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투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우리가 원하는대로 자원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만델라와 팔레스타인, 남아공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관계도 이 연장선상에서 맺어졌다.
더욱이 둘은 모두 '자기 결정권'을 위해 투쟁하는 공통점도 있었다. 억압에 맞서고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간의 특별한 유대감이 형성돼 있었던 것이다.
감옥에서 나온 지 16일 후인 1990년 2월 말, 만델라는 ANC의 망명 정부가 있던 잠비아의 루사카에서 도착했다. 그 때 만델라는 자기를 마중 나온 한 사람과 격정적인 포옹을 한다.
바로 야세르 아라파트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었다.
만델라는 3개월 뒤 알제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는 아랍 남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케피예'를 입고 참석해 돈독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남아공의 대통령에 오르던 1997년, 만델라는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유 없이는 우리의 자유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대통령으로서 팔레스타인을 국빈방문한 1999년에도 만델라는 이렇게 말하며 연대와 지지를 표시하기도 했다.
"대립보다는 평화를 선택하라. 우리가 얻을 수 없는 경우, 우리가 나아갈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만약 유일한 대안이 폭력이라면, 우리는 폭력을 사용할 것이다."
2013년 12월 5일 만델라가 사망하고 3년이 지났을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요르단강 서안 도시 라말라에 만델라의 거대 동상을 세워 결초보은한다.
만델라 서거후 다른 대통령이 들어섰지만 지구촌 곳곳에서의 억압에 반대하고 해방을 지원하려는 남아공 외교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더욱이 과거부터 이어져온 이스라엘과 과거 남아공 백인 정권간의 유착관계도 만델라 이후 남아공 정부의 수반들은 잘 알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과거 남아공의 백인 정권이 남아공 흑인 국민들을 죽이기 위해 사용한 많은 무기들을 판매했다. 나아가 백인 정권에 핵탄두까지 제공하기도했다.
현 대통령인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자 목에는 케피예를 두르고 손에는 작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채 카메라 앞에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팔레스타인사람들)은 거의 75년 동안 점령당해 왔습니다. 그들은 자기 땅을 점령한 압제적인 정부, 최근엔 인종차별 국가라고 불리는 정부와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