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만 깨물어 먹어도 사람들의 꿈과 욕망을 이뤄주는 위험한 수제 쿠키가 엘리트 고등학교를 집어삼키고(드라마 '하이쿠키'), 마약에 취해 환각을 일으킨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드라마 '7인의 탈출') 등 콘텐츠 안에서 '마약'은 더 이상 낯선 소재가 아니다. 한-중-일 삼국의 마약 밀매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경찰의 공조수사가 벌어지기도 하고(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 심지어 괴력을 지닌 일반인이 히어로처럼 신종마약 범죄 수사를 돕기도 한다(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영화나 드라마 속 마약과 마약사범은 '절대 악'과 '절대 악인'이고, 이들을 소탕하는 건 정의 구현이자 이른바 '사이다'(통쾌한 전개를 일컫는 말)의 핵심이다. 이러한 서사는 마약의 위험성과 폐해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경각심'을 주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효과지만 현재 콘텐츠에서는 경각심과 공포를 넘어선 그 이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뉴스 등 보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마약 밀매 조직이나 밀매상뿐 아니라 배우 유아인으로 시작해 최근 마약 논란이 일어난 배우 이선균, 가수 지드래곤 등 마약 혐의 보도 속 용의자나 피의자 모두 우리가 돌을 던져야 할 대상이다.
마약 범죄에 대한 처벌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과오에 대한 책임과 처벌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다면 처벌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문제는 뉴스에서도, 콘텐츠에서도 '처벌'과 '낙인' 외에 더 필요한 지점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최근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가 발표한 '2023년 9월 마약류 월간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2만 23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47.6% 증가했다. 모든 마약류 사범이 증가한 가운데 연령별로는 20, 30대가 1만 451명(51.7%)으로 절반이 넘었고, 10대도 4.9%(988명)에 이르렀다.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는 마약류 사범 탓에 정부는 관련 부처를 비롯해 유관 기관까지 동원해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포 속에는 엄벌의 의미는 담겼지만, 처벌 이후는 보이지 않는다.
'헤로인 vs. 히로인'은 처벌 이후 '치료'라는 '기회' 역시 정부와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임을 재확인시킨다.
작품의 제목 속 '히로인'이기도 한 사람들은 마약이 헌팅턴만이 아닌 전국적인 문제이자, 정부와 공동체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엔 "장기적인 치료를 시작하면 생산적인 시민이 돼서 납세의 의무를 지킬 거고, 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 할 것"이라는 이유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감독은 약물 중독자들이 응당 받아야 할 처벌을 받은 이후 치료에 참여하는 모습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이처럼 마약류 사범들의 처벌 이후 사회복귀에 대한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일찌감치 그 필요성이 제기됐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019년 '마약류범죄 분석을 통한 마약중독자 사회복귀 방향성'에서 "더 이상 처벌 위주의 마약중독자에 대한 접근보다는 이들의 치유를 통한 사회복귀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실제 마악류 범죄 재범 및 암수 범죄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형사처벌보다는 치료·재활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위해 마약중독자에 대한 처우인식의 변화와 효율적인 치료 재활프로그램 시행도 언급했다.
박 교수는 "마약중독자에 필요한 것은 엄격한 처벌을 통한 반성보다는 따뜻한 지역사회의 관심과 치료·재활"이라며 "이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편견보다 치료만이 사회복귀를 가능케 할 것이며 사회적 폐해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헤로인 vs. 히로인' 속 마약 법원 판사는 '정직'과 '참석' 그리고 '마약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약 법원의 모습 또한 인상 깊다. 잘못에는 처벌을, 치료 의지와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주며 처벌과 치료, 즉 낙인과 대안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다. 판사조차도 약물 중독자들을 영원한 낙오자로 보지 않고 회복 가능한 사회의 일원으로 바라본다.
사회는 약물 중독자 내지 피의자에게 '낙인'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처벌과 치료를 거쳐 돌아올 수 있는 자리와 구조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회의 몫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마약 문제가 중독자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문제이자 공동체의 도움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헤로인 vs. 히로인'은 콘텐츠가 현상과 문제를 짚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대안'까지 보폭을 넓혀야 함을 작품으로 말했다. 마약을 다루는 국내 콘텐츠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