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한자처럼 쓰기.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을까. SM엔터테인먼트 레드 프로덕션(3센터)의 정고운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리더는 최근 CBS노컷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 필수 이미지 중 문자가 크게 들어간 가훈/사자성어 액자가 있었다는 점을 우선 언급했다.
어린 시절, 거실에 참새 두 마리가 앉은 매화나무 액자가 걸려 있었다는 정고운 리더는 "액자 위로 한자처럼 보이지만 RED VELVET 알파벳으로 만들어진 문자를 떠올렸다"라고 말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다채로운 색채를 가진 시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칠 킬'의 전반적인 콘셉트에서 특히 '동양풍'이 돋보였다. 큰 날짜 칸과 호랑이 그림으로 고전적인 무드가 물씬 풍기는 스케줄러를 시작으로 병풍, 자개장, 액자, 댕기 등 다양한 소품이 여러 티저 이미지에서 노출됐다. 멤버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과 스토리텔링도 있어 팬들 사이에서 다양한 '세계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보편적 동화나 이야기는 "평범한 인물이 어떤 사건을 경험하며 잠재된 강인함을 꺼내어 성장·성취"하는 플롯을 취하고 있다면서도 "단어가 고정하는 관념을 해방하면 삶에 대한 시각이 유연"해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악당'을 "주인공을 유혹하고 고난에 빠트리지만 성장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 존재라고 바라봤다. '칠 킬' 가사에도 '내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라는 맥락이 담겼다고 부연했다.
"레드벨벳에게도 함께 지나온 모든 경험이 '호랑이'이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호랑이'와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에, 주변을 잘 관찰했을 때 다소 공감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아요. 그리고 레드벨벳은 함께 시간과 경험이라는 '호랑이'를 통해, 세상을 이루는 원소로 성장했습니다. 멤버들의 특징, 각자 부여받은 원소, 연관된 신들의 이미지를 조화롭게 연계하여 티저 이미지의 두 번째 비주얼에서 원소와 아이템을 하나씩 가지게 된 배경입니다. 위와 같은 의도를 담은 시각적 표현을 토대로, 댕기, 호랑이, 자개장, 소나무 분재 등은 말씀드린 모든 요소가 연결된 실타래를 엮어 아트 디렉팅의 면에서 채택한 오브제들입니다." (정고운 리더)
'칠 킬' 세계관에서 레드벨벳은 자매다. 여기에 '아이린은 고요했다' '웬디는 태생적으로 밝았다' '슬기는 자매들을 사랑했다' '조이는 항상 불안했다' '예리는 평범하고 해맑았다' 등 멤버별로 구체적인 캐릭터도 부여됐다. 지난 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된 캐릭터 페이지는 뮤직비디오에서 각자 맡은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 보조 장치로 둔 것이었다.
티저 콘텐츠 공개 과정에서 웬디는 다른 멤버들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개인 티저 영상이 다른 멤버와 달리 하루 뒤에 공개된 것이 대표적이다. 티저 이미지의 분위기도 혼자만 다른 결이었다. 우연일까. 의도된 것일까.
정고운 리더는 "뮤직비디오 공개 전에 티징을 통해 이미지를 쌓아가는 팀인 만큼, 웬디가 특정 역할을 가지는 뮤직비디오의 시놉시스와 연결 고리로 복선을 표현하고자 했다. 예측하기 어려워했던 비주얼 콘셉트나 원소 기호들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서도 추정, 발견할 거리가 있도록 몇 가지 장치를 티징에 숨겼다"라고 귀띔했다.
'레드벨벳만이 할 수 있는 현대 동화'. 뮤직비디오의 목표였다. "힘든 현실을 스스로 부수고 나와 그들만의 결말을 맞이하는 주체적인 캐릭터"를 그려내, "어제 혹은 오늘의 우리가 쉽게 공감하길 바라며, 레드벨벳과 동일한 설정으로 서사를 만들었다"라고 김선유 리더는 전했다. 자매가 사는 공간은 주택에 미술적 판타지를 더해 완성했다. 많은 한국 영화를 살펴보며 방향을 논의했고, 친숙한 정서의 구조와 가구, 스토리의 무드가 묻어난 텍스처의 벽지, 캐릭터 취향을 녹인 소품을 섞어 "아름답지만 서늘한 분위기"를 내고자 노력했다고.
김 리더는 "다만 이번 타이틀 곡 콘셉트는 '레드'와 '벨벳' 콘셉트가 공존하기에, 양면성이 드러나는 키워드에 집중해 진행했다. '밝은 비극' '내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와 같은 키워드가 논의되었고, '벨벳' 같은 현실이라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레드' 같은 미래를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멤버들이 만들어 내는 아우라가 대단하다 보니, '벨벳' 콘셉트 속 멤버들의 모습이 좀 더 부각된 것 같다. 서늘한 현실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하며 즐기는 멤버들은 '레드' 그 이상의 밝음이라고 생각한다. 트레일러 속 멤버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더 이상 악몽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기다린다. 뮤직비디오 속 자매도 본인들이 만든 비극에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며 춤을 춘다. 그것이야말로 '칠 킬' 같은 면모"라고 짚었다.
레드벨벳은 앨범 콘셉트를 잘 표현한 독특한 패키징의 앨범을 꾸준히 내는 팀이기도 하다.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 때는 오르골, '벌스데이'(Birthday) 때는 케이크 버전을 준비했다. '칠 킬'은 두 종류의 포토북 버전, 두 종류의 가방과 묶은 스페셜 버전, 수채화 느낌의 패키지 버전, 얼굴을 클로즈업한 포스터 버전, CD가 없는 SMini 버전이 마련됐다.
정고운 리더는 "저는 레드벨벳 하면 원단이 떠올라서 '레드벨벳이면 빨간 벨벳 가방이 있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앨범을 구매하는 팬분들, 자신의 앨범으로 소장할 멤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도 앨범의 완성도를 놓칠 수 없었다. 상자 속 가방과 포토카드 세트, 사진을 보다 더 크게 즐길 수 있는 크기의 책자까지, 앨범별로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다채롭게 레드벨벳을 만날 수 있는 구성으로 완성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앨범을 만들 때 쉽게 훼손되지 않고 오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소장할 수 있도록 품질을 지키고자 했지만, 패키지 버전은 '일부러' 코팅하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레드벨벳은 '칠 킬' 발매를 맞아 레드 서클 : 레드 벨벳 × 원형들'(RED CIRCLE : Red Velvet X Wonhyeongdeul)이라는 팝업도 열었다. 정고운 리더는 카페 '원형들'의 '독특한 심미성' '시각적 해석력'을 협업 이유로 꼽았다.
그는 "식품 소재를 이용해 색다른 시각화를 이뤄내고, 예술에 대한 창의적인 행보가 레드벨벳과 잘 닿아있다고 생각했다. '칠 킬'을 '원형들'의 시각으로 해석해 즐길 수 있게 준비했다. 재킷 사진 소품도 배치돼 있으니 멤버들을 조금 더 가깝게 느낄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MD(소속사에서 낸 공식 상품, '굿즈'라고도 함)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