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문제로 '급여 체불설'까지 뒤숭숭한 한전…잔인한 겨울 온다

연합뉴스

'200조' 부채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한국전력이 내부에서 자금조달 문제로 '급여 체불설'까지 나오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전의 재무적 체력이 떨어지면서 송전망 설치 일부분을 개방해 민간과 협업을 도모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가운데 적자 폭이 커지는 동절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25일 정부와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은행 차입과 한전채 발행으로 전력 구입비 등을 충당하고 있는 한전은 향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말 여야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적립금과 자본금'을 합친 금액 기준 기존 2배에서 5배로 늘리는 개정안을 의결했지만, 올해는 추가적인 법 개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작년에는 여야가 채권 발행 한도를 늘려서 일단 위기를 벗어나긴 했는데, 올해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들었다"며 "단순히 여야 이견 문제가 아니라 우량채권인 한전채가 여기서 더 추가 발행되면 채권 시장에서 중소기업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기요금의 '역마진 구조'가 올해도 지속되면서 올 1~3분기까지 적자는 약 6조4천억원 늘었다. 지난 2021년 이후 한전의 누적 적자는 약 45조원에 육박한 상태로, 올해 적립금의 대폭 감소로 인해 오는 2024년 한전채 한도는 약 70조원에 머물 것으로 관측된다. 한전채 발행 잔액이 이미 80조원을 초과했기 때문에,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오는 2024년 초에 한전은 기존 빚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이같은 분위기 탓인지 최근엔 한전 직원들 사이에서 '12월 급여 체불설'이 돌며 논란이 됐다. 지난 22일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따르면 한전 직원으로 보이는 한 이용자는 한전이 한전채 이자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 다음달 직원들 급여 체불 위기에 놓였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통화에서 "역마진 구조로 인해 연말로 갈수록 위기가 고조되자 일부 회의에서 '자칫 월급도 못 줄 정도로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게 와전된 것"이라며 "급여 지급엔 이상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과거 IMF 시절에 잠시 급여를 못 줬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현재 그 정도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고 했다.

'급여 체불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논란이 발생한 것은 천문학적인 적자로 인해 위기에 빠진 한전의 현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국제 에너지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지만, 정부가 고물가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전기요금은 소폭 인상에 그쳤다.

도매가격이 소매가격보다 비싼, 이른반 '역마진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4분기 전기요금 관련 산업용을 kWh(킬로와트시)당 10.6원, 약 7% 인상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동절기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한전은 올해 4분기에 재차 6천억원가량 손실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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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망 정비 및 신설 문제도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전은 전력 공급 이외에도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전국 각지로 배송하는 송전망 등에 대해서도 총괄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

주로 우리나라 동부와 남부 등 해안가에 있는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은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으로 배송되는데, 설비 노후화 문제 등으로 대규모 재정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전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데이터센터 등 운영을 위해선 오는 2036년까지 송전망은 현재의 1.6배가 더 필요한 것을 전해졌다. 이에 필요한 비용은 약 56조5천억원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재정 위기로 인해 한전의 투자 여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송전망 문제가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내에선 송전망 설치 및 건설 일부분을 민간 업체에 개방해 협력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산업부는 다음달 초 '전력계통 혁신대책' 발표와 함께 민간 협업 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송전망 자체를 민간 업체에 개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건설 일부분을 민간과 함께 참여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국내 전력 독점 기업인 한전이 담당했던 송전망 사업이 민간에 개방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수 선진국에서 도로와 전력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민간 기업의 참여는 흔한 사례지만, 한전의 경우엔 송전망 부지 수용 등 문제 해결이 선결 조건이라는 지적이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송전망 문제는 결국 주민 수용성이 핵심인 사안"이라며 "민간 기업들이 주민 수용성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정부가 개입해서 처리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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