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압박 이어 '라면 사무관'…식품업계 옥죄기 어디까지

연합뉴스

가공식품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정부의 압박에도 일부 업체들이 인상을 단행하면서, 정부가 아예 품목별 담당자를 지정해 상시 가격 점검에 나서고 있다.

버티다 못한 기업들이 가격은 동결하되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을 선택하자, 정부는 이번에 실태조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업계는 약간의 여지만 보이면 즉각 전개되는 '질식 수비'에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우유·빵·라면·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9개 품목, 햄버거·피자·치킨 등 외식 메뉴 5개 품목 등의 가격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 이른바 '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 등이 지정된 것이다.

담당 사무관들이 매일같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가격 동향을 확인하고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까지 나서는 건, 정부 압박에도 먹거리 물가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 비용에 환율까지 높아 원자재 수입 부담이 가중되는 등 기업들의 인상 요인이 누적된 상황이지만, 정부는 체감도가 높은 식품 물가라도 제어한다는 일념 하에 주기적으로 간담회를 열면서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올해 초까지는 '불가피한 경우에도 인상폭을 최소화해달라'거나 '식품업계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었지만, 6월 들어서는 국제 밀 가격 하락을 근거로 라면업계에 "적정하게 가격을 내리든지 해서 대응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람(추경호 경제부총리)"이라는 발언이 나오는 등 더 구체화됐다.

지난달에는 외식업계를 향해 "가격 인상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달라"는 언급을, 식품업계에는 '일부 원료 가격 상승에 편승한 '부당한'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등 발언 수위가 더 강해졌다. 그럼에도 버티다 못한 햄버거, 주류, 유제품 등에서 인상 릴레이가 벌어지자, 정부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스탠스를 전환한 셈이다.

'민감 품목'에 대한 집중 관리는 당장은 효과를 거두는 것 같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서고 있는데, 가격 인상은 검토 조차 못 할 상황"이라며 "일단 연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다들 올해는 넘어가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일부 업체에서 가격은 유지하되, 제품 용량은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을 단행하자 정부는 이달 말까지 실태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가격 인상에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업계 입장에서는 궁여지책으로 꺼낸 카드이지만, '꼼수 인상' 여론을 업은 정부가 즉각 제재에 들어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전방위 압박이 실질적인 물가 안정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다른 관계자는 "우리도 소비자들의 가격 인상에 대한 거부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 올리고 싶지만, 손해를 볼 수는 없으니까 용량을 줄여서라도 팔겠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나올까 싶긴 하지만, 결국에는 가격 인상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에도 서민 생활과 밀접한 52개 생필품에 대한 별도 관리에 착수했지만, 해당 품목들의 5년간 물가 상승률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6배로 오히려 가격이 더 올랐다.

중앙대 경제학부 이정희 교수는 "정부가 물가를 관리하고 있다는 신호는 줄 수 있겠지만, 원가가 오른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관심이 덜해지는 순간 가격을 올리게 될 것"이라며 "단순히 관리하면서 올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효과가 없고, 정부가 원가 구조 등에 대한 정확한 시장 진단을 통해 인상 편승 행태나 과도한 인상을 실시하지는 않는지 파악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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