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험 재정 논란에 대통령실에서 "산재 '나이롱환자' 급증" 발언이 나온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산재환자 모욕하는 대통령실 규탄 긴급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오전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증언대회를 열고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작업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다치거나 아파서 산업재해를 신청해 치료를 받고 있는 노동자를 '나이롱 환자'로 인식할 수 있는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승인율이 높은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산재로 추정해 판정을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인정하겠다는 고시 개정안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정의 원칙' 적용이 협소하게 이뤄져 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17년 9월 특정 업종에서 일정 기간 이상 일한 노동자가 특정 질병에 걸릴 경우 재해조사에서 현장조사와 역학조사 등을 생략하고, 서면 심사와 전문가 자문 결과를 바탕으로 산재 여부를 결정하는 추정의 원칙을 도입했다. 2018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직종에서 발생하는 직업성 암 8종, 2019년 탄광부, 용접공, 석공 등의 직종과 석면에 의한 폐암 등, 2022년 근골격계 질환 등으로 그 대상이 점점 넓어졌다.
하지만 근골격계 질환 산재 신청은 한 해 1만여 건에 이르지만, 연간 추정의 원칙 적용 대상은 500건도 되지 않아 산재 심사 처리 기간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타이어지회 오동영 부지회장은 "한국타이어 생산현장의 모든 공정에서 작업자는 모든 신체부위를 이용해 정형작업과 비정형작업을 해야 하고 이 작업이 장기간 이루어져 모든 신체부위에 질병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추정의 원칙 적용 상병과 다른 상병이 함께 접수됐다는 이유로 추정 원칙 적용이 불승인되는 등 재해자들의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추정의 원칙을 도입하게 된 배경은 산재 결과를 받아보기까지 4~6개월 이상 걸리는 기간을 단축하고자 하는 취지로 도입했던 것인데 실질적으로는 단축이 얼마만큼 됐는지 의문"이라며 "추정의 원칙에 대한 범위를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지난 13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 재정 부실화 의혹을 제기하며 "전 정부의 고의적 방기로 '나이롱 환자'가 급증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오 부지회장은 "현장 노동자들은 바닥에 있는 20~25kg의 약품 포대를 가슴높이 통으로 옮겨서 보충하는 작업을 8시간 동안 200포대 이상 반복하고, 손목과 팔꿈치 어깨에 많은 힘을 줘 바닥에 있는 빈 라이어를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루 180~200개 소화하는 등 같은 작업을 수년간 똑같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노동자 신체에 무리가 가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하다못해 기계도 오랫동안 사용하면 망가지고 고장 나는데 사람이 아프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라며 "(나이롱 환자) 발언하기 전에 직접 노동현장에 나와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노동을 하는지 체험해봤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17년째 학교 급식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정경희 대구지부장은 "대부분 급식노동자가 오랜 급식으로 인해 손가락 기형이 생겼거나 무거운 쌀 포대, 식판, 식자재를 들고 나르는 작업으로 허리디스크를 앓거나 무릎 연골이 다 닳았지만, 산재 입증하는 과정이 어렵고 대체인력도 구하기 힘들어 어지간하면 산재 신청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다"며 "우리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봤다면 노동부 장관과 대통령실은 그 말이 얼마나 잘못되고 우리들을 모욕하는 말이었는지 알 것"이라고 호소했다.
휴업일수 기준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삼성전자 LED 공정 작업을 하다가 뇌종양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이하희(31)씨는 "뇌종양 수술을 하고 치료비와 함께 1년 8개월 정도의 휴업급여를 지급받았다"며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해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일을 시작했고 휴업급여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휴업급여가 병원에 간 날만 나왔다. 1~3개월에 한번 하루치만 나왔다"며 "여전히 통증이 심해서 일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는 제가 취업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휴업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후 노무사 도움으로 심사청구 해 휴업급여를 받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같은 자문의사 소견을 이유로 휴업급여가 지급되지 않으니 다시 심사청구를 받으라"며 휴업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씨는 "결국 또 노무사가 공단에 문제를 제기한 후에야 휴업급여가 나왔다"며 "산재가 인정되면 아파서 일하지 못하는 기간에 휴업급여를 준다고 했는데, 이렇게 힘들게 받는 것인 줄 몰랐다"며 휴업급여 청구의 지난한 과정을 설명했다.
이씨는 "우리는 나이롱 환자가 아니다. 정말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데도 이렇게 휴업급여조차 받기 힘든 현실이 슬프다"며 "잘못된 것을 고쳐주고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지 마시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