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특별히 홍영선 기자를 부른 이유가 있습니다. R&D(연구개발) 예산이 올해 여름부터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현재는 국회의 예산 정국이 시작되면서부터 "R&D 예산조차 '정쟁의 도구'가 됐다" 이런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 R&D 예산을 취재해오고 있는 홍영선 기자를 만나서 얘기 들어보려고 합니다.
◆홍영선> 과학과 IT 분야를 취재하고 있는 홍영선 기자입니다. 이렇게 주말뉴스쇼에서 인사드리게 돼 반갑습니다.
문제의 발단
◇조태임> 우선 R&D 예산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R&D 예산이 이렇게 삭감된 게 지금 31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건가요?
◆홍영선> R&D 예산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우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예산이 갑자기 뒤바뀐 게 첫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다보니 이런 말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는데요. 정부의 R&D 예산이 굉장히 세세하게 정해져 있는 절차가 있는데 그게 다 뒤엎어지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전문가들 얘기를 들으면서 6월까지 예산을 다 짠 뒤에 기획재정부에 넘겨야 하는데, 딱 그 마무리되는 시점에 대통령이 "R&D 예산 나눠먹기 하면 안된다" 이런 말을 하면서 예산이 뒤엎어졌고요. 그 뒤엎어진 예산이 무려 5조 정도가 깎이게 되면서 이 논란이 시작됐던 거죠.
◇조태임> 얼마가 깎였죠? 한 번 짚고 넘어가주세요.
◆홍영선> 올해 정부 R&D 예산이 31조 1천억원인데요. 내년 정부의 R&D 예산은 25조 9천억원으로, 5조 2천억원 삭감됐습니다. 퍼센테이지로 따지면 16.6% 고요. 굉장한 삭감률인데요. R&D 예산은 사실 IMF때도 깎인 적이 없었거든요. 추경호 장관은 R&D 예산이 성역이냐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성역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사람이 전부다' 이러면서 엄청난 인적 투자를 하게 된 거죠. 그런 흐름으로 봤을 때 정권과 상관 없이 R&D 예산을 늘려 갔던 겁니다.
◇조태임> 자 그럼 아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이 문제의 시작이 됐다, 이렇게 말했는데 카르텔 발언 말씀하시는거죠?
◆홍영선> 네. 이 문제의 발단은 올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저도 사실 8월에 복직을 한 까닭에 그때부터 집중 취재하게 됐는데요. 과학계에서는 6월 말부터 예산 삭감 얘기들이 나왔고 아무래도 예산이 깎일 거다 이런 조짐들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조태임> 6월 말부터. 6월이 좀 중요한 시점인 건가요?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홍영선> 네 6월 말이 중요합니다. 과기정통부가 기재부에 예산안 뼈대를 짜서 넘기는 시점이어서인데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르면 R&D 사업과 예산에 대한 보고를 '누가' '언제까지' '어디에' 넘겨야 하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과기부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각각 제출한 R&D 사업의 투자우선순위에 대한 의견과 예산요구서 등에 대해서 자문회의 심의를 거쳐 그 결과를 6월 30일까지 기재부장관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게 헷갈리는 분들이 있으실 수 있어서 미리 말씀 드리면, R&D 즉 연구개발은 사실 과기정통부만 하는게 아니라 전 부처가 골고루 합니다. 왜냐면 다른 교육부나 산업부 이쪽도 연구개발을 해야하는 게 상당히 많거든요. 이제 그럼 누가 컨트롤해야하는 거 아니냐 해서, 과기부의 혁신본부라는 곳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좀 해라, 해서 혁신본부가 이 역할을 하고 있고요. 혁신본부장은 차관급의 직책입니다. 여기서 이제 모아서 각 부처의 R&D 예산과 사업을 모아서 추리면 과기부장관이 기재부장관에게넘기는 게 바로 6월 말인 겁니다. 이때를 위해서 부지런히 R&D 관련 전문가들 모아놓고 설명회도 하고 중간보고도 한 뒤에 예산안을 마련하는 겁니다.
◇조태임> 이게 아예 법으로 정해져 있군요. 그리고 날짜까지 정해져 있네요.
◆홍영선> 네 아예 딱 법으로 정말 촘촘하게 설계가 돼 있더라고요. 이게 거의 전년도 말부터 계획이 시작되는 건데요. 그러니까 24년도 R&D 예산안을 짜기 위해서 22년도 말부터 전문가들이 모여서 계획대로 논의를 하고 예산안을 짜고요. 23년도 6월 말에 어느 정도 이제 확정이 되면, 기재부와 국회 거치면서 어느 정도의 증감이 있긴 하지만, 큰 뼈대가 완성된 거잖아요. 그걸 보고 이제 연구자들은 한 해의 계획을 세우게 되는 거죠.
전개와 위기
◇조태임> 자 그런데 딱 기재부에 넘기기 전에 대통령이 카르텔 발언을 했고 예산이 다시 만들어졌다는 거죠?
◇홍영선> 이게 카르텔 발언으로 유명해지긴 했는데요. 사실 카르텔이라고 발언은 한 적이 없다고 해요. 과학자들은 어떻게 우리한테 카르텔이라고 하냐 상당히 격앙이 됐었고 국감에서도 굉장히 논란이 됐었는데요. 정부 등에 따르면 대통령은 카르텔이라고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R&D 분야에서 나눠먹기 문제는 있으니 그걸 시정하라고 한 거다 이 정도로 정리가 됐습니다. 한 번쯤 취재해서 확인해보고 싶은 부분이긴 하지만 현재는 그렇습니다.
그 발언을 한 게 바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요. 6월 28일. 문제의 날이죠. 이렇게 질타를 받고 이제 과기부는 난리가 난 거에요. 그러다보니까 바로 다음 날 각 부처 R&D 예산 담당 부서에게 다시 예산안을 조정해가지고 어떻게 할 건지 재투자안을 제출해달라는 지시를 하게 됩니다. 이 자료를 의원실 통해서 확보했는데요. 이게 상당히 웃긴 게 7월 3일까지 제출하라고 합니다. 다시 새로운 예산안을. 근데 이 문서를 보낸 게 목요일이거든요? 근데 내라고 하는 때는 월요일입니다. 그러니까 평일 기준으로는 목금 이틀만 주어진 거고. 주말 포함해서는 딱 4일을 준 거죠. 이러니까 '졸속'이란 얘기들이 나오는 겁니다. 왜냐면 원래 만들어졌던 6월 버전의 예산안과 4일 동안 만든 예산안이 너무 다르거든요. 삭감을 한 분야나 삭감의 정도 부분에서요.
◇조태임> 그래서 이례적으로 과학자들이 엄청난 반발을 했던 거군요. 그렇다면 과학계에서 가장 문제로 삼고 있는 부분들이 뭔가요?
◆홍영선>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도 상당히 문제지만, 방금 말한대로 절차가 있는데 졸속으로 이뤄진 행정 절차와 솔직하지 못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 더욱 분노했습니다. 예산을 책정할 때 꼭 필요한 연구 분야와 과제가 있어서 몇 개월 동안 짜놓은 게 있는데 다 무시하고 대통령 한 마디에 나랏 돈 수조원이 왔다갔다 하는게 이제 정상이냐는 물음이죠.
그리고 갑자기 늘린 글로벌 R&D 사업에 대해 우려가 컸습니다. 아까 그 새롭게 짠 예산안에서는 이제 국제공동연구를 늘리라고 어디다 투자할 곳까지 지정해줬거든요? 근데 다른 외국의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한다? 그냥 듣기엔 너무 멋지고 괜찮아 보이잖아요? 그런데 실무진들에게 얘길 들어보니까 국제공동연구는 다른 나라와 함께 공동 연구를 해서 노하우나 이론을 쌓아가고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능력을 같이 키워나가자는 취지가 있는데, 이틀 만에 졸속으로 글로벌 R&D 사업을 추진하면 제대로 된 사업이 추진되겠냐는 반문들이 나왔습니다. 어떤 중견 연구자는 이런 말도 하더라고요. "우리가 같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어하는 선진국들의 연구자들이 그렇게 쉽게 노하우나 실험 성과 공유하지 않는다. 단기적 실적이나 결과물만 강조하다 보면 결국 단발성으로 에산을 낭비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말들을 들으니까 굉장히 답답하더라고요. 저도 실제로 취재해보니까 예산이 깎인 곳들은 어떻게든 '글로벌'이란 걸 넣어가지고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 이런 지시가 떨어졌다고도 합니다.
◇조태임> 또 젊은 연구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이런 얘기도 나왔잖아요. 우리 홍 기자는 실제로 그 분들도 만나서 인터뷰 기사를 썼고요.
◆홍영선> 정부가 R&D 예산을 깎으면서도 계속 했던 말이 이제 신진 연구자, 젊은 연구자 지원은 확대했다는 것이었는데요. 저도 이게 좀 헷갈려서 일부러 젊은 과학자들을 무작위로 좀 만나봤는데요.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젊은 연구자 가운데 특출난 일부의 지원이 늘어났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젊은 연구자들의 실질적 지원이 대폭 삭감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부의 예산안은 이른바 '될놈'에게만 몰아주는 거 아니냐 이런 말들이 좀 나왔었는데요. 물론 될 분 몰아주는 거 저는 이것도 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학자분들도 그랬고요. 근데 문제는 다른 생태계까지 다 파괴하면서 되는 분들에게만 몰아줬다는 데 있습니다. 기초연구 쪽 분야에서만 봐도 '생애 첫 연구' 비용이 아예 사라졌는데요. 이게 말 그대로 이제 막 교수가 됐는데 연구비가 없는 분들에게 어떻게 보면 '사다리' 같은 역할을 한 셈이었는데 이런 게 다 깎였습니다.
또 신진 교수들 말고도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인 포닥터, 이런 분들은 걱정이 뭐 였냐면 예산이 다 삭감된다고 하면 어떻게 되냐. "결국 지도 교수의 프로젝트에 참여 연구원으로 공부하는 미생들인데, 이 보통의 중견 과학자들을 쓰러뜨리면 학생들은 바스라진다" 이런 말들을 하더라고요. 이 얘기 듣는데 저는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또 다른 국면, 여야 정쟁의 도구화
◇조태임> 그래서 과학자들의 반발과 엄청난 비판 여론, 홍 기자도 계속해서 썼고요. 언론 보도들이 계속해서 나오니까 여당도 증액 기류로 돌아섰잖아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홍영선> 저도 좀 취재를 해봤더니 대통령실 쪽이나 여당 기류가 많이 바뀌어서 사실 약간 안심을 했거든요. 아 어느 정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증액이 되는 게 아니겠느냐. 하지만 야당은 여당의 증액 기류가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겠다, 구체적이지 않다, 합의가 잘 되지 않는다 이런 말들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주 각 상임위에서 예산소위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결국 며칠 전 과방위 소위에서 야당이 단독으로 8천억원을 증액하기까지 이르더라고요. 여당은 그제서야 과학자들 얘기 듣는다고 간담회를 하고 있었고요. 약간의 시간차는 존재하긴 했지만 그래도 증액 쪽으로 여야가 어느 정도 공감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였거든요. 소위에서 야당의 단독 합의 말고, 여야가 좀 만나서 얘기를 더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조태임> 그래도 어쨌든 8천억원 증액이 된 거면 이제 좀 해결이 된 거라고 봐야 할까요?
◆홍영선> 아닙니다. 그 증액은 과방위 소위에서 야당이 단독으로 의결을 한 거고요. 이제 상임위에도 올라가야 하고 예결위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8천억원이 증액이 됐다, 마무리됐다 이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야당 주도로 예산안을 증액하더라도 헌법에 따라 예산 증액과 신규 편성엔 최종적으로 정부 동의가 필요합니다. 사실 지금 여당은 야당이 단독으로 증액한 8천억원을 보면 너무 인건비에만 몰아줬다, 결국 내년 총선을 노린 게 아니냐, 포퓰리즘이다 이런 공격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갑자기 R&D 예산이 여야의 '정쟁의 도구'로 쓰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래도 정부·여당도 R&D 예산에 대해 보완 방침을 밝힌데다,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야당과 정치적 타협에 나설 거란 관측도 있어서 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조태임> 그럼 현장 상황은 어떤가요?
◆홍영선> 현장은 여전히 대혼란 그 자체입니다. 제가 아까 말했듯이 6월 달에는 큰 뼈대가 나와서 어느 정도 연구 계획을 세운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벌써 해가 다 지나가고 있어요. 11월입니다. 그런데 6월달 버전으로 어느 정도 예산안 큰 그림이 그려졌는데 며칠 만에 새로 확 삭감됐다가. 그걸 또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6월 버전으로 확 늘렸다가. 그러다보니 이제 과학계는 또 걱정인 거죠. 너무 여야가 양 극단으로 예산을 확확 뒤집으니까. 결국에는 정말 증액 해야 할 것들이 다 잘려나가고. 여야 싸움에 R&D 예산만 망가지는 게 아니냐고요.
기초연구를 하고 있는 한 교수님은 "오히려 엉뚱하게도 정말 필요한 양팔이 다 잘려나가는 건 아니냐"고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국회에서 아직도 예산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인데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요. R&D 예산을 확 깎거나 확 늘리거나 그런 부분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연구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예산을 이용할 수 있을 지.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정말 정부가 키워야 하는 분야는 어디인지 현장에서 의견을 듣고 이를 잘 반영해서 발전적으로 예산을 책정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