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글로벌 선사인 HMM 매각을 둘러싼 파도가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해운경기 악화로 HMM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줄었지만 1조 원 규모의 영구채 주식전환에도 불구하고 주식 가격에 큰 변동이 없는 등 시가총액이 단시일 내 급감할 가능성은 제한적인 상황이어서 HMM 몸값을 두고 파는 쪽과 사는 쪽의 온도차가 커지고 있어서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는 지난 9월부터 시작한 HMM 실사를 이달 8일 마무리하고 오는 23일 본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선 예비입찰에서 동원·하림·LX그룹(가나다 순)이 적격인수후보(숏리스트)로 선정됐고 이들은 본입찰때 희망 인수가를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매각가를 5조 원에서 7조 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 중인 영구 전환사채(CB)와 영구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그만큼 주식 가치가 희석돼 주가가 더 빠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 10일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하던 1조 원 규모의 HMM 영구 전환사채(CB)와 영구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주식으로 전환됐음에도 불구하고 당일 주가는 전일 대비 0.98% 상승하는 등 전망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이후 주가가 조금씩 빠지고 있긴 하지만 HMM 시가총액(시총)은 10조~11조 원 규모로 커졌다. 당초 인수후보들은 7조 원대인 HMM 시총을 감안해 인수금융을 포함해 5조~6조 원대 자금조달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동원그룹은 지주사 동원산업의 자회사인 미국 참치통조림 1위 업체 스타키스트의 기업공개(IPO)를 전제로 스타키스트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해 5~6천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키스트는 동원산업의 100% 자회사다. 아울러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을 유동화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하림그룹은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JKL파트너스와 손잡고 유가증권 매각과 영구채 발행, 선박 매각 등으로 재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그룹 소속 해운사인 팬오션은 최근 한진칼 주식 390만3973주를 1628억 원에 처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수후보들 중 재무상황이 가장 양호했던 LX그룹이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올해 6월말 기준 LX그룹의 현금과 현금성 사잔은 2조 5천억 원 규모로 인수 후보 중 가장 많다. 시장에서는 LX인터내셔널의 유상증자와 보유 자산 매각, LX판토스 상장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회장이 직접 나서 HMM 인수 의지를 밝힌 동원과 하림 등에 비해 인수 의지가 약하다는 꼬리표가 달렸고 실사만 하고 빠질 것이라는 시각이 예비입찰 참여 때부터 나왔다.
이런 가운데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영구채 전환으로 매각가의 기준이 되는 시총이 껑충 뛰었고, 영구채가 추가 전환될 경우 인수 후보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해운 경기 악화로 '어닝 쇼크' 수준을 보인 HMM 실적이 향후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매도자와 매수자간 희망가격 차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HMM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75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7% 하락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매출액(2조 1266억 원)과 당기순이익(954억 원)도 작년 동기 대비 각각 58%, 96% 떨어졌다. HMM은 영업이익률이 3.6%로 적자를 내거나 소폭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대부분의 글로벌 선사들과 비교하면 상위권에 속한다고 항변했지만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등 불안정한 정세에 따라 4분기 실적도 순탄하지 않을 전이다. 해상 운송 항로의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 3분기 886~1043으로, 지난해 동기(1922~4203)의 4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다.
한편 HMM 노조는 인수 후보들의 기업 인수를 반대하며 채권단에 유찰을 요구하고 있다. HMM 노조는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인수 예비 업체 3곳은 자기자본 조달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로 이들은 사모펀드 등 막대한 외부 자금의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 최대 선사의 매각은 자본 수익 회수에만 몰두하는 투기 자본의 잔치로 변질할 것이고, 어렵게 축적한 자본이 민영화 이후 인수기업의 다른 목적으로 유용된다면 국내 해운산업의 발전은 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산은은 올해 안으로 HMM 매각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재차 밝혔지만 강석훈 회장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HMM) 적격 인수자가 없다면 반드시 매각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유찰 가능성을 내비치며 시장의 '유찰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후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이 "해운업 특성상 공공기관이 하기에는 부적합한 업종"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해진공 김양수 사장도 국감에서 'HMM이 새 주인을 찾더라도 일부 지분을 계속 보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매각 속도 조절 전망에 힘을 더하는 모양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견그룹 입장에서는 HMM이 매력적인 매물이지만 향후 해운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인수기업은 물론 HMM와 국내 해운업계 모두 현재 후보자들보다 자금력이 탄탄한 후보들이 나설 때까지 매각을 미뤄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