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 설문조사?…노동부, 근로시간 개편 재시동[정다운의 뉴스톡]



[앵커]'주 최대 69시간 노동'을 허용하려다 거센 역풍을 맞았던 정부가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 다시 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현재 52시간인 한 주 최대 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노사정 사회적 대화로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이희진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이 기자, 먼저 오늘 결과가 발표된 설문조사가 어떤 건지부터 설명해 주세요.

[기자]노동부가 지난 3월 '주 최대 69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한 주 최장 노동시간을 법정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3월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발표된 개편 방안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기존 1주에서 월, 분기, 반기 심지어 연 단위로 확대해 연장근로를 몰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행 1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 체계로는 특정 시기에 또는 갑작스레 급증하는 업무량에 대응하기 어려워 관리 단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는 물론 전 국민적 반발에 부딪히자 추진 동력을 상실한 정부는 "광범위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이번 설문조사를 시행했습니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간 근로자 3839명과 사업주 976명, 일반 국민 1215명 등 총 6천 명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방문 면접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앵커]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기자]한국노동연구원과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가 이번 조사를 수행했는데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 등과 관련해서는 일단 노동부 입맛에 들어맞는 모습입니다.

근로자 41.4%와 사업주 38.2%, 일반 국민 46.4% 등 모두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동의하지 않는다보다 10%p 넘게 높았습니다.

특히, 전체 산업이 아니라 제조업 등 일부 업종과 직종에만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를 적용하는 방안에는 동의 비율이 한층 높았습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가 특히 필요한 업종으로 제조업과 건설업 등이 꼽혔습니다.

그럼 연장근로 단위 확대는 어느 정도까지가 좋겠느냐는 물음에는 월 단위가 노사 모두 60% 안팎으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분기 단위는 10% 중반대였고, 반기와 연 단위는 선택 비율이 한 자릿수에 그쳤습니다.

[앵커]연장근로 단위 확대 동의 비율이 근로자도 40%가 넘는 건 의왼데요, 이유가 뭡니까?

연합뉴스

[기자]그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정부가 연장근로 단위 확대 명분으로 내세우는 게 지금 주 단위 52시간제로는 갑작스런 업무량 급증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번 조사에서 '현 제도에서는 갑작스러운 업무량 증가 등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항목에 근로자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동의하지 않는다가 30.9%로 동의한다 28.2%보다 높았는데, 업무량이 급증해도 현 제도에서 대응이 대체로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사업주 경우는 대응이 어렵다가 33.5%로 어렵지 않다 31.3%보다 높긴 했지만, 그 차이가 1.5%p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현행 근로시간 규정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업주는 전체의 14.5%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두고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사업주 86%가 현행 주52시간제가 괜찮다는데 왜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거냐"고 정부를 꼬집었습니다.

[앵커]이번 조사에서 수용 가능한 주 최대 노동시간은 얼마로 나왔나요?

[기자]네, 근로자와 사업주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따른 근로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방안으로 '한 주 최대 근로시간 한도 설정'을 으뜸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도로는 '1주 60시간 이내' 즉, 법정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 최대 20시간이 근로자 75.3%와 사업주 74.7%로 절대적이었습니다.

'64시간 이내'가 근로자 13.6%, 사업주 12.2%로 그다음이었습니다.

정부가 애초에 시도했던 69시간 등 '한 주 64시간 초과'는 선택 비율이 노사 모두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근로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방안으로는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도 근로시간 한도 설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꼽혔습니다.

[앵커]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근로시간 개편을 다시 추진한다는 방침이죠?

연합뉴스

[기자]그렇습니다. 그런데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서'라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고용노동부 이성희 차관 얘기 들어보시겠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 소중한 의견이 담긴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 적용 업종과 직종 그리고 주 최대 근로시간 등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들으신 대로 이 차관은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조사 결과대로 제조업 등 일부 업종 일부 직종에서 월 단위 연장근로 관리와 주 최대 60시간 등을 지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이 차관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노동단체와 경제단체의 적극적인 대화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앵커]이에 대해 노동계 반응은 어떤가요?

[기자]민주노총은 이번 설문조사가 '답정너' 즉, 미리 답이 정해진 질문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깎아내렸습니다.

전반적으로 주52시간제의 문제점과 애로사항을 설명하고 그래서 정부가 추진하는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방식이라는 주장입니다.

민주노총은 또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필요한 업종과 직종을 선정하겠다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 명분용 노사정 대화는 참여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노총도 "연장근로 단위 확대가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에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국민을 우롱하는식의 설문조사였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노총은 대통령실의 사회적 대화 복귀 요청은 수용하기로 해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근로시간 개편 노사정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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