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거품' 빠졌나…여기저기 '허리띠' 졸라매기

전기차 수요 둔화에 완성차 업체 셈법 복잡
공격적인 투자 거두고 전략 하향 잇단 발표
급성장 中기업 중에서는 구조조정 한파까지
전기차 시장 성장 약화…배터리 업계도 파장

연합뉴스

전기차 수요가 기대와 달리 빠르게 둔화 국면을 맞으면서 글로벌 완성차 제조업체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전동화 흐름에 뒤질세라 공격적인 투자로 달려가던 업체들 저마다 전략 하향을 발표하며 속도 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일부 기업들은 인력 감원과 구조조정 등 한파까지 맞았다. 전기차 시장과 궤를 같이하는 배터리 업계에도 파장이 미치고 있다.

14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9월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는 총 966만5천대로 전년 동기 대비 36.4% 증가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성장세이지만 속도는 둔화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전세계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61.3%였다. 고금리 상황과 소비자들의 전기차 선호도가 위축되면서 전반적인 수요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성장세가 주춤하자 글로벌 완성차 제조업체들도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전동화 전환 전략을 잇따라 수정하는 추세다. 앞서 제너럴모터스(GM)는 내년 중반까지 전기차 40만대를 생산하기로 예고했지만 최근 계획을 폐기했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인근에 건설하려던 전기차 전용 공장의 가동 시기도 2025년으로 1년 연기했다. GM은 이같은 결정을 두고 "전기차 수요 변화에 맞춰 효율적으로 현금을 관리하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업체들도 완급 조절에 나서기는 마찬가지다. 포드는 애초 계획한 전기차 투자 가운데 120억달러(약 16조원)의 지출을 미루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올해 3분기 전기차 부문에서만 13억3천만달러의 손실을 본 탓이 컸다. 존 롤러 포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고는 있지만, 예상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류영주 기자

이밖에 폭스바겐은 2026년 독일에 설립하기로 한 전기차 전용 공장 계획을 백지화했고, 테슬라는 멕시코에 지으려던 기가팩토리의 착공 시점을 기존보다 늦출지 검토에 들어갔다. 테슬라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17억64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일론 머스크 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 당시 "폭풍이 몰아치는 경제 조건 속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 있다"며 최근의 전기차 수요 둔화를 우려했다.

국가적인 지원 속에 단기간 급성장한 중국 업체들의 경우 상황이 보다 심각하다. 일각에서는 20여년 전 닷컴 버블과 비슷한 수준의 붕괴 양상을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중국판 테슬라로 불린 전기차 업체 웨이라이는 이달초 대규모 감원 계획을 내놨다. 총 직원 2만7천여명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2700명을 해고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10월까지 웨이라이의 누적 판매량은 12만6천여대로, 판매 목표인 25만대의 절반에 머물렀다.

한때 중국 전기차 업계에서 총아로 주목받던 웨이마는 지난달 9일 파산을 신청했다. 첫 양산 모델인 EX5를 시작으로 5년여간 몸집을 키워갔지만 올해 1분기 712대의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법원 문을 두드렸다. 중국 전기차로서 처음 유럽에 진출한 아이웨이즈는 수개월째 직원 급여를 주지 못하다가 공장 가동을 멈췄고, 톈지자동차는 아예 일부 사업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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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속도 조절은 배터리 업계에도 파급이 적지 않다. 지난 11일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와 추진중이던 튀르키예 배터리셀 합작 공장 프로젝트를 철회하기로 결정한 것도 전기차 수요 둔화와 무관치 않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소비자들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고려했을 때 배터리셀 생산 시설의 투자를 지속하기에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데에 상호 동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GM과 건설 중이던 미국 테네시주 합작 공장도 가동 시기를 내년으로 미뤘다. 또 폭스바겐의 전기차 감산에 맞춰 폴란드 공장 가동률도 탄력적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SK온은 포드와 2026년 완공하기로 예정했던 미국 켄터키주 2공장(블루오벌SK)의 가동 시점을 늦출지 논의중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를 우려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업황이 개선될 거라고 내다본다. 남주신 교보증권 연구원은 "여전히 높은 가격과 충전시간·주행거리에 따른 수요 둔화로 전기차 시장의 단기 부진이 예상된다"면서도 "오는 2025년부터 배터리 가격 인하에 따른 전기차 가격 하락과 충전 인프라 확충 완료의 조건이 완성되면 2026년 전기차 침투율은 18%까지 성장 가능할 걸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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