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끄는 글로벌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수요가 폭발적인 모습이다. D램을 중심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4분기 본격 회복하면서 내년 실적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만 글로벌 경기 둔화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현재의 감산 기조가 정상화하면, 봄에 접어든 메모리 반도체 업황에 다시 한파가 불어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컨퍼런스콜에서 "내년 HBM 공급 역량은 올해 대비 2.5배 이상 확보할 계획으로 이미 해당 물량에 대해 주요 고객사와 공급 협의를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다.
앞서 SK하이닉스도 "HBM3와 HBM3E의 내년 캐파(생산능력)가 현시점에서 솔드아웃(완판)됐다"면서 "2025년 생산량도 고객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HBM은 AI(인공지능)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로 4세대 제품인 HBM3가 시장에 공급 중이고, 5세대 제품인 HBM3E는 내년 상반기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현재 글로벌 HBM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내년 HBM 생산 물량이 모두 판매됐다.
AI용 서버 수요 확대를 토대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는 내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3분기 적자 3조 7500억 원을 기록한 삼성전자 반도체(DS) 사업부분은 4분기 적자 규모를 1조 원대로 대폭 축소하고, 내년 상반기 흑자전환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3분기 적자 1조 7920억 원인 SK하이닉스도 4분기 수천억 원대로 적자를 줄인 뒤 내년 상반기 흑자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키움증권의 경우 재고 부담 완화와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에 힘입어 흑자전환 시점을 4분기로 예상했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여전하다는 평가다.
경제와 지정학적 요인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탓이다.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미국의 경기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현재 진행형인 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물리적 충돌이 더해졌다.
최악의 상황은 중동전쟁이 발생해 유가가 상승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내년 미국과 대만의 대선이 지정학적 위기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유진투자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하드랜딩까지는 몰라도 소프트랜딩이라고 보기 어려운 기울기로 경기가 하강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면서 "매크로의 불확실성이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중요한 변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업황 회복을 이끈 업계의 감산 기조가 정상화하면,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다시 얼어붙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하이투자증권 송명섭 연구원은 "업황이 개선될수록 반도체 업체는 감산 원복에 대한 유혹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만일 경쟁사 중 하나가 먼저 원복에 나설 경우 시장점유율의 급락에 관계없이 혼자 감산을 유지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업황 회복이 한참 진행 중일 내년 하반기쯤 반도체 업체가 감산 원복을 본격화하고, 수요 증가율이 생산 증가율을 상회하지 못한다면 메모리 반도체 업황은 다시 둔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