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약 유통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의료기관이 폐업한 뒤 재고 등으로 남게 된 마약류 의약품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가감시망에서 사라지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감사원은 9일 이같은 내용의 식품의약품안전처 정기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식약처는 2018년부터 마약류 의약품의 제조·유통 및 사용·폐기 전 과정을 추적·관리하기 위해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의료 용도로 쓰이는 펜타닐, 프로포폴, 졸피뎀 등 마약·향정신성의약품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감사 결과 의료기관이 폐업한 뒤 재고 처리나 사용량 등 마약류 의약품에 대한 관리가 허술해 국가 감시망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령에 따르면 의료기관이 폐업할 때는 이런 재고를 다른 의료기관이나 도매상 등에 양도·양수하고 이를 식약처에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2019-22년 사이 의료기관 920곳이 폐업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마약류 의약품 174만여개를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13개 폐업 의료기관을 샘플조사한 결과 5개소는 폐업한 뒤 해당 의약품을 분실하거나 임의로 폐기했다고 주장하는 등 불법유통 가능성이 농후해 고발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관할 보건소가 이미 고발조치한 곳도 2개소가 나왔는데, 식약처는 지자체와 현장조사 등을 실시하지 않고 있어 상당량이 감시망에서 사라지고 불법유통에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다.
문제의 마약류 의약품은 이른바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레미펜타닐 4256개, 옥시코돈 5108개, 프로포폴 7078개, 케타민 1097개, 졸피뎀 9만 4594개 등이다.
마취약으로 쓰여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프로포폴을 예로 들면, 앰플 단위로 포장돼 유통되는데 환자의 나이나 몸무게 등에 따라 쓰는 양이 모두 달라 보통은 약이 남게 된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이 업무상 편의나 감시를 회피하기 위해 잔량을 허위보고할 가능성이 있어 식약처가 집중관리할 필요가 있다.
감사원이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19-22년 사이 의료기관 1만 1천여개소에서 '프로포폴 사용 후 잔량이 없다'는 보고가 2677만여건이었다. 하지만 식약처는 폐기량이 아니라 사용량이 많은 의료기관 위주로만 현장조사 등을 실시하여, 프로포폴 보고·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실제로 10개 의료기관을 샘플조사한 결과 그 중 5곳에서 실제 사용 후의 잔량 추정량이 약 33만ml (4만 7544명 투약분) 발생했는데도, 전량 투약한 것으로 허위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대부분은 허위보고 자체는 인정했지만 전량 폐기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증명할 자료는 내놓지 못했다.
이밖에도 감사원은 식약처가 위해식품 차단을 위해 제조·수입업체 등에 회수명령 등 조치를 하고 관련 정보를 '위해식품 판매차단 시스템' 등에 제공하지만, 2020-22년 사이 중금속 오염이나 농약 검출 등 위해식품 1055건 중 108건(1059톤)은 일선 매장에 바코드 정보가 가지 않아 판매차단 대상에서 누락되고, 14건(7톤)은 업무처리 소홀 등으로 대외에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또 식약처가 176개 위해우려 화장품 원료에 대한 위해평가를 위해 연구용역을 실시했고, 그 결과 '헤나' 등 6개 원료가 인체에 위해할 수 있다는 내용을 알고도 길게는 4년 6개월까지 위해평가 결과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등 사후조치를 실시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그 결과 위해우려 물질이 함유된 화장품 약 2904만개(공급액 679억여원)가 시중에 그대로 유통되는 일이 발생했다.
2019-21년 사이 45개 업체가 13개 사용금지·제한물질을 사용하여 화장품 85종을 제조했다고 식약처에 보고했는데도 사실 확인을 위한 현장조사·소명 요구 등 조치 없이 방치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 가운데 3개 업체는 '클림바졸' 등 2개의 사용제한물질을 사용해 바디워시 등 화장품 5종을 제조·유통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