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군 당국은 최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북한이 이번 발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러시아의 기술 자문을 받으면서 엔진시험 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2차 발사에서도 실패를 해 체면을 구긴 만큼, 북러정상회담을 계기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발사를 성공시키겠다는 의미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군의 첫 독자 정찰위성 '425 사업'의 첫 위성을 오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발사할 것이라고 계획을 공개했다. 북한이 이 때를 전후해 발사를 감행한다면 공교롭게도 남북의 '정찰위성 경쟁'이 될 전망이다.
2단 고공 엔진서 어려움 겪는 北, 러시아 기술자문 받아 보완?
북한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5월 31일 1차 발사의 실패 원인은 1단 로켓 분리 뒤 2단 엔진 점화 과정에서 비정상적 작동을 해 추진력을 상실한 것이다. 2차 발사의 경우 1단과 2단 로켓까지는 정상 비행했지만 3단 로켓에서 비상폭발체계(자폭장치)에 오류가 발생한 일이다.단 이는 북한의 주장이고 2차 발사 직후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2단체가 일부 비정상적이지 않느냐는 판단을 하는 근거가 확인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기술에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2단 비행이 완전하지 않았다고 중간 결론을 내도 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게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혀, 북한이 일정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의 자칭 '우주발사체' 천리마-1형은 기존 화성-12형, 14형, 15형, 17형 등에 장착한 백두산 엔진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엔진의 정체는 구 소련제 RD-250 엔진을 자체적으로 복제·개량한 물건으로, 원본 RD-250은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36(NATO 코드명 SS-18 '사탄')에 쓰인 바 있다.
R-36은 '드네프르' 라는 이름으로 상용 우주발사체로도 쓰인다. 사실 미국의 타이탄·아틀라스, 러시아의 소유즈처럼 ICBM이 우주발사체로 전용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때문에 러시아의 기술자문을 받는다면 일정한 진전이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다만 어느 정도일지가 문제다. 먼저 러시아 측이 기술진을 파견하거나, 거꾸로 북한 기술진이 러시아를 찾아 일종의 '지도'를 받는 방법이 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자 인력 위주이므로 비밀리에 진행하기 적합하다.
전례도 있다. 프랑스는 1970년대 다탄두 각개목표 재진입 비행체(MIRV) 개발 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 프랑스 과학자는 미국 과학자에게 개발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설명하고, 미국 과학자는 그 방법이 적절한지 아닌지만 답하는 방식이었다.
신원식 장관은 "엔진 보강에 시간이 걸리는 것 같고, 북러정상회담 때 푸틴 대통령이 도와주겠다고 한 것을 보면 구체적인 기술을 많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에서는 다시 쏴볼까 할 수 있는데 러시아에서 볼 때는 보강이 필요하다고 보거나, 구체적인 기술적 지도가 와서 미뤄지고 있을 수 있다. 후자(러시아의 기술 지도에 따른 지연)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신 장관의 말대로 북러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방문해 안가라, 소유즈-2 로켓 등을 둘러본 것을 생각하면 보다 진전된 협력도 가능하다. 단순한 자문뿐만이 아니라 개발을 위한 시험을 러시아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북한은 1·2차 발사에서 두 번 다 2단 로켓의 점화 또는 비행에 문제를 겪었다. 1·2단에 같은 백두산 엔진을 썼다고 해도 2단부터는 고공에서 점화된다. 1단과 달리 산소가 없거나 희박한 상황에서도 정상적으로 점화되고 비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구조 변경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명예연구위원은 "북한의 2단 고공 엔진에서 연소 불안정성 문제가 발생했는데, 2단 엔진은 1단 엔진과 달리 진공 상태에서 비행하기 위해 엔진 노즐을 확장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때문에 연결 부위는 길어지고 전체 길이도 길어지므로, 선진국들은 노즐을 접는 방식 등을 쓰는데 여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이를 위한 모의 실험도 필요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고공 환경을 모사한 챔버가 필요한데, 이러한 첨단 시설은 북한에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러시아가 자체 보유한 진공 챔버를 통해 북한의 고공 엔진을 시험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오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북한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거꾸로 '우주발사체' 기술의 발전을 통해 그동안 고각으로만 발사해 완성을 장담하지 못했던 ICBM 개발에도 진전이 있을 공산이 크다. 다만 국정원은 ICBM 완성에 꼭 필요한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대해서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며, MIRV 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고 있다.
北 11월 말에 쏜다면 남북한 '정찰위성 경쟁'…하지만 대응책은 글쎄
군 당국이 인양해 분석한 결과 '정찰위성으로서의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던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 또한 러시아의 기술자문을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합리적이다. 오히려 이쪽이 민간용 기술과 많이 겹치는 만큼 더 활발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이미 북러정상회담 당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는 취재진 질문을 받고 "그래서 우리가 여기 왔다"며 "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우수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바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김기원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10월 19일 열린 우주·미사일방어 전략포럼에서 "정찰위성과 관련된 기술이전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의 소유즈-2 또는 안가라 로켓의 일부 공간을 활용해 북한의 정찰위성을 탑재해 쏘아 올리는 방식이 가능하고, 북한이 러시아에 정찰위성 제작을 의뢰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춘근 명예연구위원도 "(단순히) 부품을 제공해서 기술 수준을 올려 주는 방법이 있고, 위성을 만들 때는 3축 자세 제어와 에너지 공급 그리고 스타트래커(별 센서) 등 기본 장비를 갖춘 플랫폼을 여러 개 만드는데 이 플랫폼을 지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카메라 등의 임무장비를 탑재하고 업그레이드해 가면서 개발을 하는데, 위성을 아예 만들어 주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 키트'를 제공함으로써 수준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발사에 성공한다면, 일찌감치 우주 미아가 되어 버린 북한의 기존 위성들을 대체하는 상징적 의미뿐 아니라 그동안에 없었던 '눈'이 생기면서 북한은 전략·작전적 이점을 얻게 된다. 신원식 장관은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식별된 징후로 볼 때 1-2주 내에 발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11월 말 정도에는 할 수 있을 가능성은 있지 않겠느냐"면서도 "그것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11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독자 정찰위성 '425 사업'의 첫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므로, 북한이 실제 11월 말에 위성을 발사한다면 자연스레 남북한의 '정찰위성 경쟁'이 될 전망이다.
한미는 다음 주 토니 블링컨·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방한과 함께 안보협의회의(SCM)와 유엔사 국방장관 회의 등을 통해 이같은 상황을 평가하고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백악관은 얼마 전 과거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을 만들었던 커트 캠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른바 '아시아 차르')을 국무부 부장관으로 지명했는데, 이를 보면 중국과 더불어 북한 문제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도 해석된다. 캠벨 지명자는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의 미국 측 대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적 군사도발은 억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북한이 2021년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언급한 '자위적 국방력'을 갖추기 위한 무기 또는 수단들의 개발까지 억제할 수 있는 선제적인 해법은 별로 없다는 점이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