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동'(立冬)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때 아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울을 포함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낮 기온이 25도 안팎까지 오른 전날(3일), 시민들은 옷소매를 걷어붙이거나 외투를 벗은 채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달력의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었지만, 반팔티를 입은 시민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임유정(43)씨는 "밖이 추울까 봐 걱정했는데 포근한 날씨에 나들이를 나와서 좋다"며 "아직 겨울옷은 꺼내 입지 않고 간절기용 점퍼를 걸치고 나왔다"고 말하며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조카 박태헌(9)군과 나들이를 나온 송은정(36)씨는 "요즘 날씨를 보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애매해서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챙겨본다"며 "오늘은 날씨가 풀려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왔다"고 했다. 옆에 있던 박군도 "날씨가 춥지 않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여행객들은 예년과 다른 서울의 가을 날씨에 당황하기도 했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 주변은 겨울 코트와 경량 패딩 등을 갖춰 입은 여행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따뜻한 날씨 탓에 절경을 이루던 단풍은 만날 수 없었고, 단풍나무 대신 활짝 핀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시민들이 많았다.
부산에서 친구와 함께 여행을 온 나혜원(24)씨는 "부산에 있을 때는 날씨가 추워서 겨울옷을 꺼내 입었다"며 "서울은 더 추울 것 같아서 코트를 입고 왔지만, 어제부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당황했다"고 변덕스러운 날씨에 혀를 내둘렀다.
어제 대전에서 올라온 김서현(24)씨는 "얇은 니트를 입었지만 서울이 너무 더워서 돌아다니기 힘들었다"며 "서울은 대전에 비해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덥다'고 들었는데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함께 여행을 다니는 김예림(22)씨도 "코트를 챙겨야 할지 니트를 챙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광주도 아직 더워서 겨울옷은 미리 꺼내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초여름 날씨가 이어졌다. 주말에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가끔 비가 내려 늦더위는 한풀 꺾이겠지만 여전히 기온이 평년(최저기온 1~11도, 최고기온 15~19도)보다 조금 높겠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낮 기온은 수도권과 강원영서는 20도 안팎, 그 밖의 지역은 25도 안팎까지 치솟았다. 주말인 4일과 5일 낮 최고기온은 각각 15~24도, 17~24도로 이날보다 5도가량 떨어지겠다.
때 아닌 더위가 찾아온 까닭은 이동성 고기압 영향이 크다. 북서쪽에서 발달한 대륙 고기압에서 떨어져 나온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남동쪽에서 따뜻한 공기가 한반도로 유입되면서 평년보다 기온이 높게 관측되고 있다.
기상청 우진규 예보분석관은 "남쪽으로부터 특정 기압계가 더욱 강하게 올라오거나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지 못하는 등 (기후적인 요소들이) 결부되면 기온이 확 올라간다"며 "기후 변화도 이런 양상들에 영향을 주지만 일시적인 기압계 형성이 더욱 주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달 들어 따듯한 날씨를 보이는 곳은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반구를 중심으로 이달 초 날씨가 관측 이래 역대 11월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고 보도했다.
'열돔'이 형성돼 찬바람이 사라지면서 이달 들어 첫 이틀 동안 우리나라 뿐 아니라 북한, 몽골, 필리핀, 튀니지, 방글라데시, 키프로스, 몰타 등 동반구 8개국도 역대 가장 더운 11월 날씨를 기록한 것이다.
3년 만에 발생한 '엘니뇨'도 평년보다 따뜻한 겨울에 영향을 미치겠다. 엘니뇨는 12월 말쯤 열대 동태평양이나 중태평양 표층 수온이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황이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 영향으로 이번 해 한반도에는 겨울철 남풍류가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고기압 영향으로 불어 드는 따뜻한 공기에 더해 따뜻한 남풍이 불면 겨울철 기온이 온화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