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또 '카르텔' 맞장구…이번엔 산재보험 겨냥

여당 의원 '산재 카르텔 감사' 주장에 노동부 '근로복지공단 특정감사' 즉각 호응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이달 한 달 동안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특정감사를 벌인다.

지난 1일 노동부는 특정감사 착수 배경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등에서 지적된 '근로복지공단 산재 카르텔' 문제 등과 관련해서"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은 지난달 26일 노동부 종합 국감에서 이른바 '산재 카르텔' 의혹을 제기했다.

과잉 진료와 과도한 급여를 챙기는 일명 '나이롱환자'와 이들 덕에 수익을 올리는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 그리고 공단이 한통속이 돼 산재보험기금 누수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주환 의원이 국감에서 나이롱환자라고 제시한 사례 중에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사지부전마비' 등으로 6억 7천만 원 가까운 보험급여가 지급된 경우도 있었다.

국감 당시 이 의원은 "사지부전마비 환자는 양쪽 팔다리 근육이 비정상이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해당 환자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편의점을 드나들며 담배를 샀다"며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현 정권의 고질적인 '전 정권 탓하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주환 의원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산재 제도에 큰 변화가 생겨 나이롱환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나이롱환자 증가도 文 정부 탓?… "견제 장치 없애"

그 결과로 2016년까지 7800여 명이던 업무상질병자 수가 2021년에는 2만 명을 넘어 5년 새 세 배 수준으로 늘었다는 게 이 의원 얘기다.

이 의원은 "500억 원대 누적 적자를 갖고 있던 공단 직영 산재병원도 2017년을 기점으로 매년 100억 원씩 흑자를 보는 병원으로 변모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무상질병자 수 급증 원인은 나이롱환자 급증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에 따라 산재 신청 절차가 합리적으로 개선되고 산재보험 적용 범위도 갈수록 확대되면서 업무상질병 등 산재 신청과 승인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018년부터 '사업주 날인 제도'가 폐지돼 사업주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노동자가 자유롭게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업무상질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정도로 가장 큰 '근골격계질환' 경우 2017년 5128건에 그쳤던 산재 신청이 지난해는 그 두 배를 훌쩍 넘는 1만 2491건으로 증가했다.

또 다른 주요 업무상질병인 '소음성난청'은 대법원이 산재 인정 범위를 대폭 확장한 사례다.

대법원은 2014년 "소음성난청 산재 신청 소멸 시효는 기존 '퇴직 후 3년'이 아니라 '진단일부터 3년'으로 봐야 한다"며 근로복지공단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산재 적용 노동자 확대 등이 산재 승인 급증 요인

연합뉴스

2016년 대법원 판결에 맞게 관련 법령과 공단 지침이 수정됐고, 이후 소음성난청 산재 신청 역시 급증했다.

지난해 소음성난청 산재 신청은 7550건으로 2017년 2082건의 네 배 가까이 늘었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 노동자 범위 확대도 업무상질병을 비롯한 산재 승인 증가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2020년 7월부터 화물차주와 방문서비스노동자 등 '특고' 즉 '특수형태근로종사자' 5개 직종에 산재보험이 적용되면서 27만 4천 명의 특고 노동자가 새로 산재보험 혜택을 받게 됐다.

이듬해인 2021년 업무상질병자 수는 2만 435명으로 전년보다 4400명 넘게 증가했다.

올해 7월부터는 산재보험의 '전속성' 요건 폐지로 특고 및 플랫폼종사자 무려 92만 5천 명이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추가된 만큼 업무상질병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 만큼 이주환 의원 지적대로 나이롱환자로 인한 산재보험 재정 낭비 방지는 공단 주요 과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의원은 공단을 나이롱환자와 더불어 산재 카르텔을 구성하는 한 축으로 비판했다.

카르텔 낙인 고강도 압박, 노동자 피해로 이어질라

그러나 공단 측은 "과잉 진료와 과다 급여 등이 의심되는 환자들은 이미 '특별 민원인' 즉 '악성 민원인'으로 집중 관리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특별 민원인이 추가 산재 승인 등을 공단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하면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함으로써 요양을 장기간 이어 나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26일 국감에서 이 의원은 대대적인 감사원 감사는 물론 수사 필요성까지 언급하며 공단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공단 박종길 이사장은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기획 조사를 벌이고 개선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노동부는 이를 외면하고 특정감사 착수로 여당 의원의 카르텔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노동부는 지난 1일 "산재 카르텔 등 제도와 운영상 문제점에 중점을 두고 철저하게 감사할 계획이며 필요시 감사원 감사청구까지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직원들의 규정 위반과 업무 소홀 등이 적발되면 엄중하게 신분상 조치 등을 통보하겠다"며 강력한 감사 후폭풍을 예고했다.

카르텔 낙인을 찍은 정부·여당의 고강도 감사 압박이 향후 공단 측의 방어적인 업무 처리를 유발해 산재 승인 감소와 지연 등에 따른 노동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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