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추모곡 중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노래가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가사다. 영화 '소년들'이, 그리고 세 명의 소년이 17년 동안 온몸으로 외쳐오며 17년 만에 그 외침에 대해 온당한 답을 받은 과정이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노래 속에 모두 담겨 있다. '소년들'은 진실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를 향해 용기를 건네고, 작은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1999년 전북 삼례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의 수사망은 단번에 동네에 사는 소년들 3인으로 좁혀지고,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내몰린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 수감된다.
이듬해 새롭게 반장으로 부임해 온 베테랑 형사 황준철(설경구)에게 진범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고, 그는 소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재수사에 나선다. 하지만 당시 사건 책임 형사였던 최우성(유준상)의 방해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황 반장은 좌천된다. 그로부터 16년 후, 황 반장 앞에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윤미숙(진경)과 소년들이 다시 찾아온다.
소년들의 실화를 영화로 옮긴 건 그간 실화극을 통해 부단하게 우리 사회 이면을 조명하고 사회 부조리를 고발해 온 정지영 감독이다. '부러진 화살' '블랙머니' 등을 통해 우리 사회가 되돌아봐야 할, 놓쳐선 안 될 진실을 다뤄 온 정 감독은 '소년들'을 통해 어떻게 평범한 이들이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주홍 글씨를 새겨야 했는지, 약자들의 외침이 어떻게 권력을 쥔 강자들의 부당함을 넘어 자신의 진실을 되찾는지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도 친근한 매체인 영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삼례 소년들을 하루아침에 '악'(惡)으로 지목한 건 우리 사회의 '악'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불편부당한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다. 처음 소년들을 범죄자로 지목할 때는 사회에 '악은 어디에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을 들어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는 '악이 어디에 속해 있든지 상관없이'라는 문장을 더해서 평범한 소년들을 범죄자로 낙인찍은 이들에게로 되돌아온다.
영화는 약자를 바라보고 대하는 사회의 이면과 함께 '비겁한 삶'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진실을 묻고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합집산하는 이들의 비겁한 삶, 자신의 잘못을 끝끝내 인정하기 싫었던 비겁한 삶은 물론 엄마의 죽음 앞에 비겁해질 수밖에 없었던 삶, 두려움 때문에 거짓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목도하고서도 차마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비겁할 수밖에 없었던 삶 말이다.
낙인과 이로 인한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무죄를 밝히고자 했던 세 명의 소년이 법정에서 마침내 자신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외치는 장면은 존엄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무겁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를 보다 쉽게 다가가게 하는 장치이자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은 황 반장이다. 황 반장과 그를 연기한 설경구는 '소년들'에서 중심을 잡으며 관객들이 소년들의 사건과 재심을 함께해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여기에 더해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관객들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따라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진행과 일부 배역들의 과잉된 연기와 감정을 한껏 부여한 법정 신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지금도 '소년들'이 존재한다.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여전히 진실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 모든 소년에게 삼례 소년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지표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긴 시간이 걸릴지언정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표 말이다.
123분 상영, 11월 1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