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생산과 소비, 투자가 일제히 늘어나면서 4개월 만에 '트리플 증가'를 기록했다.
지난 7월 '트리플 감소'를 보였던 경기가 2개월 만에 일제히 증가세로 반등한 만큼 경기가 회복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생산·소비·투자 일제히 반등하며 4개월 만에 '트리플 증가'…통계청 "3분기 들어 회복세 강하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9월 산업활동동향'에 의하면 전산업생산(생산)과 소매판매(소비), 설비투자(투자)는 전월인 8월 대비 각각 1.1%, 0.2%, 8.7%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생산과 소비, 투자가 동시에 전월보다 상승한 트리플 증가는 지난 5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 7월만 해도 생산 -0.8%, 판매 -3.2%, 투자 -8.9%로 트리플 감소를 기록했던 탓에 하반기에도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중론을 이뤘는데, 2개월 만에 트리플 증가 지표가 나온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흐름이 뚜렷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계청 김보경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반도체 생산이 지난 8월(13.5%)과 9월(12.9%) 거듭해서 큰 폭으로 증가한 데 힘입은 결과"라며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3분기 들어 회복세가 강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회복으로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들…"회복 기대하기에는 지표 아직 좋지 않다. 더 지켜봐야"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달랐다.
연세대 성태윤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산업활동 지표들이 일제히 증가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증가 폭을 고려할 때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투자는 증가했지만 소비의 경우 증가율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생산도 지난달 생산일수가 많았던 부분을 고려하면 '충분한 정도'의 개선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통계청의 분석과 같이 해외 수출부문이 증가한 것은 향후 투자 지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려면 현재와 같은 지표 개선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도 산업 지표들이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회복이 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소비의 경우 증가폭이 0.2%에 그쳤는데, 지난 7월 -3.2%, 8월 -0.3%를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좋은 신호"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 실장은 8.9%의 증가율을 보인 투자에 대해서도 "설비 투자가 그동안 침체였다가 소폭 늘어난 것"이라며 "소비와 마찬가지로 플러스 폭이 크게 나왔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좋게 평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경기 회복세 여부에 대해서도 통계청과 견해를 달리했다.
김보경 심의관은 현재 경기의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전월 대비 0.1p 떨어진데 대해 "회복세가 두드러진 광공업생산이 동행지수에 반영되는 데 시간이 걸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4개월째 하락했지만, 하락 폭은 지난 7월 이래 줄어들고 있다"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 성 교수는 "수치가 하락했지 않느냐"며 "아직까지 경기 회복세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9월 이후 지표 등에 대한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주 실장도 "지수가 떨어졌는데, 이 떨어진 수치가 완전히 바닥이라고 하면 회복 국면이겠지만 만일 10월이나 11월에 더 나빠진다면 여전히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일종의 희망사항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수출 개선됐지만 경기부진 극복할 정도로 충분치 않아"…"미·중 경기 등 여전히 좋지 않은 대외상황"
이들은 전체적인 대외 변수 상황 또한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성 교수는 "수출 상황이 일부 개선된 것은 맞고, 투자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도 "생산 증가를 충분히 일으킬 정도로 다른 부분에서의 부진을 극복하는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의 경제성장률과 물가, 금리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여전히 국제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있기 때문에 한국도 고금리 기조 지속이 불가피하고, 이로 인한 추가적인 긴축이나 경기 관리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주 실장도 수출이 좋아진 것은 지난해 3분기 수출상황이 워낙 좋지 않았던 기저효과의 영향이 더 크다고 봤다.
그는 "3분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실적을 보면 적자 폭이 시장 예상치보다 컸다"며 "바닥을 찍고 있는 느낌이 들기는 하다. 하지만 '경기 회복'이라고 하려면 이런 느낌보다는 뚜렷하게 개선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외 요인에 대해서도 "중국 경제가 다시 나빠질 수 있다는 시그널이 나오고 있고, 미국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분기까지는 좋았지만 4분기에는 떨어질 것"이라며 "우리의 주력 수출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희망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중동 변수 심각하진 않겠지만 불안정성 유발할 수도"…"정부, 취약 부분 지원할 필요 있지만 쓸 카드 마땅치 않아"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확산세로 인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에 대해서는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세계은행은 '원자재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번 전쟁이 욤 키푸르 전쟁 후 불거진 제1차 석유파동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게 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157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주 실장은 "과거 오일쇼크 때의 중동전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의 전쟁은 이스라엘 내에서의 내전에 가깝고 주변 산유국의 참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유가는 현재 수준에서 크게 상승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다만 성 교수는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상승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임으로써 불안정성을 유발하는 것이 이후의 경기 회복을 제약할 수 있다"며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지 않더라도 불안정성 자체가 가지는 위험요인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성 교수는 "가계대출 등 금융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 증가하지 않도록 관리를 강화하고, 필요한 경우 취약한 부분에 대한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 실장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스스로 손발을 묶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며 "경기를 띄우려면 돈을 써야하는데 예산안을 비롯해 그 부분이 막혀있기 때문에 수단이 많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