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하마스를 향해 대규모 지상군 작전을 전개한 탓에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욱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미 고금리, 고물가, 소비·투자 부진이라는 국내 상황과 미국의 '나홀로 호황'이라는 대외 상황이 성장률 저하를 위협하는 가운데 중동 변수마저 커지면서 경기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스라엘 "전쟁 다음단계로 넘어갔다" 전면전 예고…상승세로 전환한 국제유가, 더 출렁일 가능성
이스라엘은 지난 2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에 대한 전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고 선언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전쟁이 2번째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하는 한편 "우리는 육지와 해상, 공중에서 싸울 것이고 지상과 지하의 적들을 제거할 것"이라며 이미 사흘 연속으로 고강도 지상 공세와 공습을 펼쳤음에도 이를 넘어서는 수준의 공격을 가하겠다고 사실상 본격적인 전면전을 예고했다.
그러자 하마스를 지원하는 최대 지원국이자 무슬림 국가의 맹주 중 하나인 이란이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에 나섰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29일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의 범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이것이 모두를 행동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작전 수위 상승에 시장은 반응했다.
뉴욕상업거래소의 현지시간 27일 기준 12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직전 거래일보다 2.33달러, 2.8% 오른 배럴당 85.54달러를 기록했다.
WTI 가격은 지상군 작전 본격화 직전인 지난 26일 2주 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었는데, 하루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
이날 가격은 지난 20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데, 주말동안 상황이 더 악화된 만큼 금주 들어서는 변동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자예 캐피털 마켓츠의 나임 아슬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트레이들이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군대의 팔레스타인 지상전"이라며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수준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에 생산자물가 상승…소비자물가도 계속 오르는데 소비자들 주머니 사정은 악화
이미 고물가 등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중동 변수의 확장이 달갑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국제유가의 상승세로 인해 3개월 연속 높아지며 지난해 9월보다 1.3%, 전월인 8월보다 0.4% 상승한 121.67(2015년이 100)을 기록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의하면 생활과 밀접한 먹거리, 통신, 주류 가격이 일제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가공식품과 외식의 2분기 물가 상승률은 각각 7.6%, 7.0%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인 3.2%를 2배 이상 상회했다.
외식 부문 소비자물가지수는 3분기 들어서는 6월 6.8%, 8월 6.3%, 9월 5.8%로 상승률이 차츰 낮아지고 있었는데 햄버거 가격 인상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맘스터치는 오는 31일부터 닭가슴살을 사용하는 버거 4종의 가격을, 맥도날드는 내달 2일부터 13개 메뉴의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오비맥주는 지난 11일 카스와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 공장 출고가를 6.9% 인상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물가가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이들 품목의 가격 상승이 추가적인 인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신 물가도 올해 들어 9개월 동안 상승폭이 1.0%를 기록하며 33년 만의 최대치로 치솟았다.
반면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은 나빠지고 있어 추가적인 소비여력 감소가 우려된다.
2분기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383만1천원으로 지난해 2분기 대비 2.8%가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소상공인에게 손실 보전금 등이 지급되면서 기저효과로 작용했고, 올해 들어 금리가 높아지며 여윳돈이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29일 고위 당정대 협의회에서 "가계 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기업 부채로 인해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몇 십 배 위력이 될 것"이라며 "특히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 대출'이나 '영끌 투자' 이런 행태는 정말로 위험하다"고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김 실장은 "요즘 소상공인들 사정이 매우 어려운 것 같다"며 "고금리·고물가가 주요 원인"이라고 현상황을 진단하기도 했다.
금리 고공행진에 미국의 '나홀로 호황'도 우려 요인…"중동 정세, 회복 중인 韓 경기에 악영향 미칠 수도"
금리 고공행진 지속도 우려의 지점이다.
한국은행의 2023년 9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의하면 9월 가계대출 금리는 연 4.90%로, 전월보다 0.07%p 높아졌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5월부터 4개월 연속 상승하며 4.35%를 기록했고, 일반 신용대출 금리도 3개월 연속 상승하며 6.59%를 기록했다.
기업대출 금리도 전월 대비 0.06%p가 높아지며 5.27%를 기록했는데, 특히 중소기업대출 금리는 5.44%로 전월보다 0.10%p 높아졌다.
문제는 미국의 '나홀로 호황' 때문에 금리가 내려가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5.50%로 한국 기준금리와의 격차가 역대 최고치인 2.00%p를 유지하고 있는데, 긴축적 통화정책 유지 기조를 보이고 있어 단기간 내 인하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이런 상황에서 누증된 가계부채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증한 기업부채, 이연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화할 수 있다며 금융권 위기 가능성도 언급했다.
지난달까지 수출이 12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했음에도 최근 들어 반도체 수출 감소율이 낮아지고 있고, 대(對)중국 수출도 다소 살아나는 등 호전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는 있다.
하지만 무역수지는 여전히 불황형 흑자에 머물고 있고, 최근 불거지고 있는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변수 등 대외요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불안한 호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20년 한국 포함 주요국 연도별 국내총생산(GDP) 갭(gap, 실질성장률과의 차이) 현황'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때문에 지난 6월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을 1.9%, 내년에는 1.7%로 추산했다.
노동과 자본 등을 최대로 투입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의 기초 경제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불린다.
OECD 추정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내년에는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데다, 최근 대외 요인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정부의 올해 '상저하고'에 이은 내년 경기회복 전망과 달리 내년 성장률이 더 위험한 수준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수출이 바닥을 확인했고, 경기가 저점을 지나고 있다는 정부의 전망은 큰 틀에서는 유지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도 "수출 회복이 아직 완연하다고 평가하기 어렵고, 고금리와 고물가도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칫 중동 정세로 인해 국제유가 등 대외 요인이 심각한 상황으로 변하게 된다면 우리 경기 회복에 좋지 않은 영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