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번 전쟁의 교훈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욱이 군사적 효용성만을 근거로 국가전략의 영역에 속하는 군사합의 무력화를 주장하는 것이 합당한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9.19 합의로 인해 군사적 영향 있는 것은 사실…신원식 "효력정지 통해 바로잡겠다"
바다에서도 서해 남측 덕적도부터 북측 초도까지,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 남북으로 각각 80km 범위의 해역에서 해안포·함포 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하지 않기로 정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이러한 군사합의의 제한사항으로 북측 산의 뒤쪽 경사면(후사면) 감시정찰이 어려워지며, 연평도에 배치된 해병대 K9 자주포 등 각종 무기들이 육지로 나와서 사격훈련을 한 뒤 다시 연평도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 등을 들어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었다.
그는 지난 10일 취임 인사차 국방부 기자실을 찾은 자리에서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언급하며 "그보다 훨씬 강도 높은 위협에 대한민국이 놓여 있는데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정찰감시"라면서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필요성을 주장했다. 23일 연평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특히 서북도서 지역은 주요화기의 사격훈련이 중지되어 전투준비태세 유지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잘못된 9.19 군사합의의 효력정지를 통해 이를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사실 군사적 측면에서만 보면 9.19 합의로 인해 이같은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견을 달지 않는다. 비행금지구역의 존재가 전방에서의 감시정찰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사합의는 '군사' 넘어선 '안보', 국가전략의 문제…고도의 정치적 판단 필요
문제는 군사합의의 의의가 이름과는 달리 '군사'적인 부분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본래 '안보'는 '국방'의 상위 차원이고 '국방'은 '군사'의 상위 차원이다. 군의 임무는 전쟁이 난다면 싸워서 이기는 것이지만, 동시에 전쟁이 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쟁 억제는 '힘'만으로 하기 어렵기에 냉전 시대에도 미소 양국이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등을 맺었다.안보적 차원에서 보면 9.19 군사합의가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그로 인해 남북간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효과는 무시하기 어렵다. 신원식 장관도 27일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감사에서 '9.19 군사합의 때문에 남북 간 군사 충돌이 줄어든 것은 인정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의 질문에 "직접 충돌은 다소 감소했으나 그동안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완전하게 고도화했기 때문에 사실상 더 위험해졌다"며, 합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했지만 동시에 완충 효과 자체는 인정했다.
그는 '군사합의를 파기하면 핵 위협이 줄어드느냐'는 이 의원의 추가 질문에는 "핵 위협의 증감과는 큰 관계는 없지만, 북한이 나쁜 마음을 가졌을 때 훨씬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 효력 정지"라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합의 체결 당시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은 최근 낸 책 '평화의 길'에서 "비핵화 협상은 극도로 예민한 과정이다. 작은 불씨도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저 비핵화 협상을 좌초시킬 가능성을 확실하게 차단해야 한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물론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방사포 도발과 무인기 침투 사건으로 인해 군사합의가 이미 형해화되었다는 시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1991년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과 2013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무효화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파기하지 않고 있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강력한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김승겸 합참의장은 지난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에서 9.19 군사합의에 대해 "군 입장에서는 전투력 운영에 있어 제한 상황이 없을수록 좋다. 그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해 이 정도까지는 가능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가지고 정책적인 결정을 한 것"이라며 "현재 9·19 합의의 효과와 달성 목적, 북한의 근본적인 위협의 변화를 보면 과연 무엇 때문에 우리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감수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은 군사안보의 전문가로서 이러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군의 전문적인 의견은 국가안보에 있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군사합의는 군사적인 문제라기보다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과 하마스는 같지 않다…전쟁의 진짜 교훈은 '정보판단 실패', '정치적 무리수' 등 다양
더욱이 이번 전쟁의 교훈이 첨예한 남북관계의 정치적 차원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도 않다. 정보판단의 실패, 정치적 무리수와 혼란 등 복잡한 문제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합동참모본부는 지난 17일 기자들에게 하마스의 △휴일 새벽 기습공격 △대규모 로켓 발사로 아이언 돔 무력화 △드론 공격으로 분리장벽에 설치된 각종 감시·통신·사격통제체계 파괴 후 지·해·공 침투·공격 등의 양상이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북한의 '비대칭 공격 양상'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비대칭전(asymmetric warfare)이란 상대방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도록 상대방과 다른 수단과 방법, 차원으로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미사일, 드론, 잠수함, 특수전 부대 등을 비대칭 전력으로 꼽으며 실제로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지난해 말 무인기 침투 사건 등 북한이 이를 이용해 여러 차례 도발한 적도 있다. 그러므로 군이 이러한 우려를 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육군 특전사령관을 지냈던 특수·지상작전연구회(LANDSOC-K) 전인범 고문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하마스의 로켓은 1.5-2m 정도로 조그맣고 여러 군데에 숨겨서 쏠 수가 있지만, 북한의 대구경포나 다연장포는 이동하는 데 그렇게 숨기기가 쉽진 않을 것"이라며 "군사합의가 시행되고 있어서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못 본다, (감시정찰 능력이) 어느 정도 저하되는 건 사실이지만 다른 것으로 충분히 보완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과 연계해 9.19 군사합의를 중지시키는 것은 좀 뜬금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이번 공격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밀집 지역인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작전 개시에 신중한 모양새다. 반면 우리 군은 북한군의 무력도발이 있을 경우 즉각 원점을 타격해 보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합참은 27일 지상작전사령부 주도로 북한 장사정포 위치를 탐지해, 대규모 화력을 퍼부어 제거하는 대화력전 훈련까지 언론에 공개했다.
육군 준장 출신인 한국방위산업학회 김규연 이사는 같은 자리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 정착촌을 모의로 만들어 놓고 습격하는 훈련, 담장을 불도저로 미는 훈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 하는 거구나'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다"며 "(공격) 10일 전에는 이집트 정보기관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정보를 줬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무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도 배워야 할 내용이다.
외국에서 벌어진 전쟁의 교훈을 정부와 군이 상기해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나아가 정책에도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전에 치밀한 분석이 우선되어야 하며, 군사적인 부분만을 내세워 남북관계의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는 군사합의의 무력화를 주장하는 것은 다소 섣부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