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구마모토 VS 용인…진격의 日반도체 투자 韓은 느릿느릿 ②尹대통령 '반도체 초강대국' 헛공약이었나··R&D 줄줄이 깎였다 ③또 헛공약? 반도체 미래 '팹리스' 키운다더니 예산 91% 깎았다 (계속) |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강조해온 반도체 설계 회사 '팹리스(Fabless)' 지원 R&D 예산이 200억 가까이 깎여, 거의 남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의 미래로 불리는 팹리스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전세계가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고 있다. 스타 팹리스 기업을 키우겠다고 공언한 이번 정부가 내년도 지원 예산 대부분을 삭감해 '반도체 헛공약' 논란은 커질 전망이다.
팹리스 키운다 공언해놓고··관련 예산 10분의1로 줄어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반도체 생산에 치중돼 있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전세계 3%에 불과하며, 그 중에서도 반도체 설계 회사인 '팹리스'의 시장 점유율은 1%밖에 안되는 실정이다. 이는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이런 편중을 해소해 시스템반도체를 키우고 반도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국가 미래와 직결돼 있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 분야보다 시장 규모가 2배 이상이며,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는데 2030년에는 자본규모가 4천231억불에 달할 전망이다. 미국, 유럽은 물론이고 후발주자인 중국과 일본에서 팹리스 투자에 수조원의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2022.7.21)에도 팹리스 지원책이 나온다. 정부는 글로벌 잠재력을 보유한 팹리스 30개 사(社)를 스타팹리스로 선정하고, 전용 R&D 예산을 책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설계툴-기획-기술-생산-판로까지 전 주기에 걸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 뚜껑을 열어보니 팹리스 지원 R&D 예산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팹리스 육성 예산(공식 명칭: 전략제품창출 글로벌 K-팹리스 육성 기술개발 R&D)은 올해 214억5000만원에서 내년도 18억2300만원으로 91.5%나 삭감됐다.
이번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진 과제 중심의 'K-팹리스 육성 사업'을 올해로 끝내고, '스타 팹리스 30 사업'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팹리스 육성 사업 예산은 10분의1 넘게 쪼그라든 것이다. 팹리스 기업들을 전폭 지원한다는 당초 발표와는 정반대의 예산 배정이다.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스타 팹리스 30 사업'만 떼어놓고 봐도, 첫해인 올해 140억원 가량이 배정된 반면에 내년에 쓸 수 있는 예산은 18억에 불과하다.
업계 "인력 유출 가뜩이나 심각한데…예산 삭감 소식에 당혹"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해온 국내 팹리스 업계는 정부의 예산 삭감 소식을 접하고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전국 150여개 남짓 되는 팹리스 회사들은 올해 초만해도 윤석열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지원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관련 R&D 예산이 대폭 삭감되자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국내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설계 개발자들이 파격 연봉을 제시하는 외국계 기업으로 많이 나가면서 인력유출이 심각한데, 내년도 R&D 예산이 대폭 삭감돼 많이 답답한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작 지자체에서는 팹리스 기업들을 유치하려 의지를 보이는 곳들이 많은데, 중앙정부 예산이 깎여버리니 힘이 빠지고 있다. 사업 유치를 아예 포기하는 지자체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은 "초기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팹리스 사업의 특성 때문에 유럽이나 중국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며 "있던 예산을 91.5%나 삭감한다는 것은 중소 팹리스 기업 육성 사업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서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을 2030년까지 10%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