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고 이주영씨 아버지)는 무겁게 입을 뗐다.
"소중한 가족을 영문도 모르고 보내던 그날, 억울하고 분해서 잠도 잘 수 없었고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일상이 멈춰버린 하루하루는 악몽이었다. 당시 생존자와 희생자의 형제자매, 친구, 연인들이 이번 구술에 참여했다. 지극히 평범했던 20대 30대 청년들이 힘들었던 참사 당일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참사 이후의 새롭게 내디뎌야 하는 이들의 삶의 무게를 담은 이야기다."
25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 지인들의 증언록을 담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출간(창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책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참사 당일과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마주해야 했던 기억을 담담하게 담아낸 인터뷰집이다. 생존자 외 유가족 형제자매와 친구, 연인을 비롯해 이태원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과 노동자들의 발언이 함께 수록됐다.
인권기록센터 사이의 유해정 활동가를 비롯해 시민·청년·활동가 13명으로 구성된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썼다.
뉴스를 전해 들은 사람들에게는 이해 못할 끔찍한 압사 사고였지만, 그날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는 공포와 절규로 가득찬 순간으로 생생하게 박제돼 있었다.
"쓰러진 저희한테 보이는 건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 클럽 입구에 있던 사람들의 시야에서 보이는 건 모두 죽어가는 사람들이잖아요. 살려달라고 내뻗는 손,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 누군가를 구하려고 절규하는 사람들…. 그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공포스러웠을 거에요." (생존자 이주현씨)
"누나를 떠나보내고 난 뒤, 조심스레 누나의 휴대폰을 보다가 한 폴더를 보고 멈췄어요. 폴더 이름은 '꿈'. 그 작은 세상 안에는 누나가 만든 키링, 공예품, 공방 카페 사진들이 모여있더라고요. (중략) 폴더 안에 빼곡한 사진과 누나의 물건들을 번갈아 보면서 누나가 고단한 직장 생활을 하며 공방 카페를 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할게 됐어요." (고 박지혜씨 동생이자 생존자 박진성씨)
핼러윈 축제가 매년 열리는 이태원은 홍대거리와 함께 젊은이들이 열기를 발산하는, 어찌 보면 평범한 공간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끔찍한 참사 현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현장을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몸은 떠밀리듯 골목길로 내몰리고 있었고 마음처럼 움직이기 어려웠다.
축제를 즐기려던 사람들, 약속 때문에 근처를 방문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태원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20대 30대 청년들이었지만 10대 학생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골목길 아래로 쓰러지기 시작했을 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끼리 엉키기 시작했다.
골목길 아랫쪽은 사람 키높이만큼 인파가 겹겹이 쌓였고 대부분 선 채로 의식을 잃거나 골절 부상을 입은 채 압박으로 숨져갔다. 저마다 '살려달라'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절규했지만 이를 도우려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가파른 골목길에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 159명이 희생된 미증유의 압사 사고는 참사 1주기를 앞둔 이날까지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고 초기 자극적인 현장 영상과 가짜 뉴스, 혐오와 비방이 쏟아지며 '왜 그런 곳에 놀러갔느냐'는 조롱이 따라붙었다. 참사의 진실과 책임 규명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희생자 김의현 씨의 누나인 김혜인 씨는 "왜 갔느냐가 아니라, 왜 돌아오지 못했느냐고 묻고 기억해야한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김 씨는 "형제들이 초반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고 희생자 형제들끼리 단체 톡방을 만들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저마다 삶의 무게가 다르고 직장 등 각자의 생활이 있다보니 지금은 다소 소원해진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가족처럼 함께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공간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참사 직후 한 외신기자가 용산 대통령실에 '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대통령실 관계자가 '놀러가서 그런 것을 왜 정부에게 책임을 묻느냐'는 메시지가 나온 뒤 무차별적으로 이러한 프레임이 확산됐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잘못된 태도와 진실 규명 의지가 없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어 "이태원은 다양한 세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라며 '이태원 낙인 찍기'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이태원은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이 즐겨야 하는 공간이자 앞으로 살아가는 데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 젊은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꿈을 꿀 수 있도록 어른들이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집필자로 참여한 유해정 활동가는 "2015년 1월 지금 기자회견장 건물과 마주보는 곳에서 세월호 참사 기록을 내고 기자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10·29 이태원 참사 기록을 내면서 마치 세월호 참사와 마주하는 심정이 교차한다"며 잠시 울먹였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것이 개선되고 고통이 이어지지 않고 더 안전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태원 참사와 윤석열 정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과연 이 참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심한 끝에 이태원 참사를 겪은 20대 30대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이후의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원 활동가들이 전국에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이 침전되어진 것 같다. 유가족, 생존자들을 무심함으로 넘기지 않고 이 책이 시민들의 책장에서, 손 위에서 단순히 책망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면서 희생자와 유가족, 함께했던 친구들을 지지하고 연대하고 슬픔을 나누는 공감의 과정으로 확장돼 이 책이 읽혀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