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위기가 조만간 확전으로 이어질 기미가 보이면서 역내 긴장감이 그 어느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2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에서 밤사이 제한적인 기습작전을 펼쳤다고 밝혔고, 이에 질세라 이란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이스라엘에 대한 제한적 공격을 허용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역내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배한 상태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일찌감치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 내 지상군 투입을 예고했으나, 아직까지 최종 결정은 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지상군을 전면적으로 전개했을 때가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스라엘이 선뜻 지상군 투입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붙잡고 있는 인질 212명(이스라엘 정부 발표)의 안전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앞서 인질로 잡고 있던 미국인 모녀를 풀어준 데 이어, 이날 이스라엘 국적의 고령 여성 2명을 석방했다.
이스라엘은 이같은 하마스의 '인질 석방'을 심리전의 일환이라며 이에 농락당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인질 문제'에 아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최우방인 미국이 '인질의 안전' 등을 이유로 지상전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이스라엘이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미국의 지원 없이는 확전이나 전쟁 장기화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하마스가 잡고 있는 인질 중에는 미국인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1일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침공 연기를 권고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같은 의중을 드러낸 바 있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이스라엘의 지상전 전개에 대해 "하마스가 지하터널을 가지고 있고, 오랫동안 싸움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지상전은 극도로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를 댔지만 속내는 바이든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
또한 이스라엘의 지상전 전개는 가자지구 내 민간인들의 막대한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하마스 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들어가던 식량·물·연료 등을 차단하고 사실상의 봉쇄령을 내렸는데, 이같은 조치도 '반(反)인도주의적 행위'라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마스를 발본색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지만, 이를 실제 행위로 옮기기까지는 걸림돌이 상당한 것이다.
또한 가자지구 내 지상전 전개는 중동지역의 다른 무장정파들을 자극해 확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란은 이번 분쟁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마스는 이란 외무장관과 "이스라엘의 '잔혹한 범죄'를 중단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고,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이란의 지침을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2년 만에 중동지역에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등 역내 대비 태세를 강화하면서 이란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중동 지역에서 '이란을 대리하는 세력'에 의한 긴장 고조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경계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에 이어 또 다른 '전선'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게 마뜩지 않다.
특히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내치와 중국 견제에 써도 모자를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풀기 어렵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블랙홀 속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으로 인해 바이든 대통령이 뜻하지 않게 '전시 대통령'이 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제 와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발을 빼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현재 '하마스 제거'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최근 가자지구 인근의 이스라엘군 주둔지에서 장병들을 만나 "가자지구에 있었던 것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하마스 말살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지금은 가자지구가 저 멀리 보이지만, 조만간 아주 가까이에서 보게 될 것"이라며 지상군 투입이 멀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역내 분쟁을 촉발하는 '트리거'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불행히도 현재로선 이를 해결할 권위있는 리더십이나 분쟁 당사자간 대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도 일각에서 제기된 '휴전 논의'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가자지구내 인도적 물품 전달을 위한 휴전은 하마스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이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이 민간 시설에 숨어들어간 하마스 군사 표적을 공격할 권리가 있다"고 옹호했다.
'확전의 기로'에서 위험한 줄타기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