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실제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끼지 않더라도 객관적이고 일반적으로 불안·공포를 느끼게 할 행동이면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또 개별 행위가 비교적 경미하더라도 누적·반복돼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기 충분한 일련의 행위라면 전체 행위를 포괄해 스토킹범죄로 볼 수 있다고도 판단했다.
스토킹행위가 살인이나 상해와 같이 현실적으로 피해를 일으키는 '침해범'이 아닌 해악을 고지해 피해자가 의미를 인식하면 죄가 성립하는 협박과 같은 '위험범' 성격으로 본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스토킹범죄가 폭넓게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15일부터 11월 18일 사이에 6회에 걸쳐 2017년 이혼한 B씨의 집에 찾아가 B씨와 자녀를 기다리거나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접근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2021년 3월 A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해 A씨를 상대로 자신과 자녀들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법원에 신청하기도 했다.
1심은 A씨 행위가 모두 B씨에게 현실적인 불안감과 공포감을 일으켰다고 보고 유죄를 인정, 징역 1년을 선고했다.
1심 판단에 불복한 A씨는 항소심 과정에서 일부 행위는 B씨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스토킹행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은 "스토킹처벌법이 규정하는 유형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인 경우에는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며 "그러한 스토킹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면 스토킹범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봐서 B씨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2심 판단은 1심과 같은 유죄 취지지만, 1심이 스토킹범죄를 침해범으로 본 것과 달리 위험범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법원도 "스토킹범죄 성립은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킬 것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다"면서 2심과 같이 위험범으로 봤다.
대법원은 "스토킹처벌법이 규정한 행위가 객관적·일반적으로 볼 때 이를 인식한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라고 평가될 수 있다면 현실적으로 상대방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가졌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하고 나아가 그와 같은 일련의 스토킹행위가 지속되거나 반복되면 스토킹범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스토킹행위가 비교적 경미한 수준의 개별 행위라도 반복되고 누적될 경우 상대방이 느끼는 불안감이나 공포심이 비약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A씨가 1개월 정도의 기간에 비교적 경미한 개별 행위뿐만 아니라 스스로 스토킹 범행이라고 인정한 행위까지 나아간 점 등을 고려하면 누적적·포괄적으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일련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피해자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스토킹행위를 판단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행위자와 상대방의 관계·지위·성향,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행위자와 상대방의 언동, 주변의 상황 등 행위 전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스토킹행위, 스토킹범죄 성립을 위해서 상대방에게 현실적으로 불안감이나 공포심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 및 객관적·일반적 관점에서 피해자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스토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을 최초로 판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