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에 국내 정유업계의 긴장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많은 변수 중에서도 업계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이란의 참전 여부다. 전쟁이 확전과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 원유 수급의 차질은 물론 전반적인 경제 악화 흐름 속에 수익 측면에서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고조되는 확전 우려에 업계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18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수입된 원유 6억 6천만 배럴 가운데 중동산 원유는 4억 8천만 배럴로 나타났다. 비중으로 치면 전체 72.4%로, 지난 2018년 1~8월 기록한 74.9%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중동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원유 수입에서 중동 비중은 2021년 58.6%까지 낮아졌지만,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정유사들이 안정적인 산유국으로 향하면서 다시 확대하고 있다. 미주·유럽 등 다른 지역보다 가까워 운송비가 저렴하고, 국내 정유사 대부분이 중동산 원유에 맞춘 정제시설을 갖추고 있어 수입선 다변화도 쉽지 않다.
이같이 중요도가 높은 중동에서의 전쟁 발발은 정유사들을 불확실성에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당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석유 생산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전쟁이 커지면 중동의 소용돌이가 국내 정유업계까지 미칠 수 있다. 과거 사례에서도 전쟁이 주요 산유국에서 벌어질 때면 국제유가가 출렁였다.
변곡점은 이란의 참전 여부다. 미국 CNN은 16일(현지시간) "주말 이후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심각한 무력 충돌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이란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들을 전쟁에 끌어들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도 "이란에는 '레드라인'(한계선)이 있다"며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실행하면 이란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란은 OPEC의 주요 회원국인 데다 최대 산유국 중 하나다. 세계 석유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도 있다. 걸프 지역 원유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이 묶인다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가 지닌 예비 산유 능력만으로는 유가 급등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도 강화될 수 있다. 조장은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 팀장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으로 상승한 유가를 잡고자 미국이 최근 이란의 원유 수출을 우회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 이란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면 수출 금지 등 대이란 제재는 재차 강해질 테고 이는 원유 수급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란 참전의 현실화는 결국 국내 정유업계에도 악재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원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이에 따라 석유제품의 가격도 상승하는데, 글로벌 경기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수요가 줄어 결국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가파른 유가 상승과 경기 악화가 맞물리면서 석유제품의 수요는 주춤한 편이다. 수요 둔화 탓에 정유사 실적을 좌우하는 정제마진도 지난달부터 다시 내리고 있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 연구소인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이란의 전쟁 개입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서고,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GDP)은 예상치보다 1.0%포인트 낮아질 거라고 관측했다.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넘어 '오일 쇼크'에 빠질 가능성도 언급했다. 오일 쇼크가 발생하면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화되고, 내년 세계 물가상승률은 6.7%에 이를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