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안을 공개한다. 소아과 폐업이 늘어 오픈런이 일상이 됐고, 의사가 부족해 추락 환자가 2시간 이상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의료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는 상황이 속출한 데 따른 것이다.
당초 정부는 2000년 의약 분업으로 줄였던 의대 정원 351명(10%)을 원상 복구하거나, 정원이 적은 지방 국립대 의대를 중심으로 500여 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필수 의료(소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학과 지원자가 없고, 지방 의료 붕괴가 심각해지자 17년 만에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기로 하면서 지연되고 전가됐던 '폭탄 돌리기'는 끝날 것으로 보이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게 확실하다. 후폭풍으로 윤석열 정부가 던진 폭탄이 불발탄이 될 수도 있고 파급 효과가 수류탄이 될 수도, 강력한 네이팜탄이 될 수도 있다.
CBS노컷뉴스는 전문의, 개원의, 전공의(레지던트), 의대생, 의대 준비생 등 각 주체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증원으로 해결 못 해" vs "환자 죽어 나가는데 반대는 탐욕"
의료계 현장에서는 의대생 정원 확대를 놓고 대부분 반대 입장을 보였다. 단순히 증원만으로 기피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요 논리다. 다만 의사가 부족해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있다며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분명히 있다.증원 반대 측에서는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지역·과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논리다. 성형외과 개원의 박 모 씨(55)는 16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응급실 뺑뺑이는 의사 수가 적은 게 아니라 고난도 시술을 할 줄 아는 의사가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며 원인 진단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2022년 사이 119 구급대의 응급실 뺑뺑이(1·2차 재이송) 건수는 총 3만 7200건으로 주요 원인은 전문의 부재(31.4%), 병상 부족(15.4%)으로 확인됐다. 뺑뺑이 사건 10건 중 3건이 전문의가 없어서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다.
박 모 씨는 이어 "의사 수를 늘려 필수 의료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라며 "기피 과를 강제적으로 선택하게 하지 않는 이상 미용 치료 의사만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방 의대 외과 전공의 한 모 씨(29)는 "의료인이 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시간과 노력, 비용 등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부분의 동료 전공의들이 반대한다"고 털어놨다.
한 씨는 의대 증원이 과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도 짚었다. 비인기과들에 대한 업무 지원 등 처우 개선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미용 분야 쏠림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의료 보조 인력, 인프라, 보상이 부족하다"며 "지방에서 살고 싶어도 여건이 부족해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수도권에 집중된 의료 시스템 문제를 지적했다.
응급실 뺑뺑이, 필수의료 과목 기피현상 등 의료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어 이제라도 의대 정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도 의료 주체들 사이에는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달에 30건의 응급실 뺑뺑이가 일어나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죽는다"며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거나, 의과대학 정원 늘리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탐욕스러운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가 OECD의 '보건 통계 2022'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의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한의사 제외)는 2.1명으로 OECD 평균(3.7명)의 56.7%에 불과하다. 이에 김 교수는 "OECD 국가 의사 수와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으려면 의대 정원을 2535명 더 늘려야 하고, 30년 후 평균치에 도달하려면 5500명을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지만 정원 확대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이 모 씨는 "많은 의사들이 의대 정원 수 늘리는 것을 반대하며 여러 근거를 제시하지만 결국 밥그릇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기피과, 지방 의료에 대한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젊은 의사들이 힘들고, 어려워서 기피과나 지방을 안 가는 게 아니다"라며 "그 과를 갔을 때 정말 후회만 남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수술, 처치, 간호 입원료 등 필요한 수가를 높이고 당직을 서는 의사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윤 교수는 "의협은 진찰료 수가를 올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수가를 올리면 병원이 대부분 그 돈을 가져간다"며 "의료인력에게 보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과만 지원하면 되는데 왜?" vs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
의대생들도 대부분 정원 확대에 반대 의견을 보였다.
수도권 소재 모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 최 모 씨(25)는 "필수과 의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수과만 지원하면 되는데 왜 시간과 비용 부담도 더 큰 방법을 택하는 건지 의문"이라고 했다.
최 씨는 "각 의과대학의 교육시설이 갑자기 늘어난 천 명의 학생을 감당할 수 있는지, 예산이나 시설 인력 등 수용력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있긴 했냐"고 지적했다.
이 학교 본과 4학년 학생 이 모 씨(26)도 "지역의료와 필수과에 대한 처우개선이 먼저"라며 "전체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것은 문제에 대한 원인을 치료하는 게 아닌 증상만 치료하겠다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정원 확대가 필수 인력 확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본과 4학년 학생 조 모 씨(26)는 "수련 병원의 전공의 TO가 증원되는 의사 수만큼 늘어나지 않는다면 미용 분야 일반의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의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생의 생각은 상대적으로 유연했다. 모 과학고 3년생 김 모 씨 (19)는 "의대 정원을 늘리면 그만큼 밥그릇 싸움이라 불리는 경쟁도 심해질 거니까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면서도 "고령화가 심각하고 그에 따라 의료 수요도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누군가 해야 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필수 의료 인력 부족 VS 의협 "파업 불사"
의사를 늘리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학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어서 입원실을 줄이고, 응급환자는 의사가 없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정원 현황'에 따르면 전국 대학병원 50곳 가운데 38곳(76%)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서울대병원이 유일하게 정원을 채웠고, 확보율 50%를 넘긴 병원은 순천향대서울병원·아주대병원·울산대병원·전남대병원 등 4곳에 불과하다.
다른 필수 의료 진료 분야도 정원 미달 상태다. 흉부외과 역시 정원 대비 확보율이 49.1%에 그쳤고, 외과 65.2%, 산부인과 74.8% 등이었다.
다만 살펴본 것처럼 의료계 현장 종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다수의 의료진과 의대생들은 의대 증원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봤지만 의료계에서도 증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다. 사회적 합의 절차가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료계와 합의 없이 의대 증원을 확정할 경우 총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CBS와 통화에서 "정부가 협의 없이 정원 확대를 강행한다면 지난 2020년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 발표 때처럼 강경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15일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