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해양과 대륙 지정학의 경쟁…'러시아는 없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반도 지정학 관련 보고서 발표
북중러 밀착, 국경 마주하는 '분열적 요소'로 구조적 한계
인태전략에 누락된 러시아 대응 지정학적 설계 필요
남북대치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섬'…남북통합 대비 지정학 검토해야

지난 9월 21일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정부의 대륙지향 지정학에서 해양확장으로 전환한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중동 등 유라시아 지역이 전체적으로 누락돼 별도의 지정학적 설계가 긴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미일 연대강화가 북중러 밀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상정되지만, 지정학적으로 북중러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분열적 요소가 상존하고 있는 만큼,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를 허무는 전략적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김성배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5일 발표한 '지정학의 전통과 한국의 지역 구상 검토' 보고서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의 정책적 핵심인 한미일 연대강화의 지정학적 파장을 스마트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소위 한미일 vs 북중러라는 지정학적 가상 구도를 허물고 북중러의 밀착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성배 연구위원에 따르면 기존 지정학의 3개 전통에 따라 해양, 대륙, 연해안 등 중시되는 핵심지역이 다음과 같이 달리 설정된다. 
 
①인도양을 지배하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할 것이고 세계의 운명은 이 바다에서 결정될 것이다. ②아니다. 바다가 아니라 유라시아 내륙지역의 하트랜드(Heartland)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 한다. ③그렇지 않다. 바다도 내륙도 아니고 해안선을 따라 내륙과 바다 사이에 위치한 완충지대, 림랜드(Rimland)를 지배하는 자가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대한민국은 인도태평양국가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기존 지정학 중에서도 해양중시 전통에 가장 큰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인태전략은 과거 한반도와 동아시아로 불리던 역내의 지리적 명칭도 '북태평양'으로 표현했다. 
 
김성배 연구위원은 "현 정부 인도태평양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한반도 중심의 지정학적 설계에서 벗어나 메가-지역전략, 나아가 세계 전략적 시야로 확장했다는 점, 역대정부의 대륙지향 지정학에서 해양확장의 지정학적 사고로 전환했다는 점"이라며, "지정학 자체가 전 세계를 하나의 판으로 보는 세계 전략적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 지역 구상이 비로소 지정학의 본질에 접근했다"고 평가했다. 
 
김 연구위원은 "인도태평양전략이 대륙보다 해양확장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한반도 정세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핵보유국의 기정사실화에 전념하는 상황에서 단기간 내 남북대치 상태가 해소되기 어렵다고 보고 남북관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해양세력과의 연결을 중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은 다만 "비전, 원칙, 추진과제 등 대부분의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안의 림랜드 지역에서 부상한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전략구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정부가 제시한 인도태평양전략의 지역적 범위가 북태평양, 동남아·아세안,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인도양 연안 아프리카, 유럽·중남미 등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면서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중동에 이르는 하트랜드 지역은 누락됐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하마스 등 전쟁이 벌어진 두 지역이 포함된 곳이기도 하다. 
 
김성배 연구위원은 "인태전략에는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지역이 전체적으로 누락된 상태"로, "역내 최대의 도전 요소인 림랜드 세력인 중국에 대한 대응에는 효과적이나 러시아 등 하트랜드로부터 제기되는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지정학적 설계가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지정학적으로 림랜드와 하트랜드인 중국, 러시아에 대한 차별적 접근이 필요하고 두 세력이 경쟁하는 구도가 한국에 유리한 만큼 인태전략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아 보이는 유라시아 대륙 전략이 별도의 구상으로 제시"되어야할 것이라고 김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북중러 밀착 구도와 관련해 "한일중 협력틀이 본격 가동되면 북중러 밀착을 적절하게 견제할 수 있는 기제로 작동할 것"이라며, "러·우 전쟁 종전 이후에는 러시아를 적절히 견인하거나 관리하는 틀로 과거 6자 회담 경험을 원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특히 "중장기적으로 북한체제의 변화에 따른 남북관계 정상화나 남북통합에 대비한 지정학적 설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북 대치상황에서는 대한민국이 지정학적으로 섬(island)이지만, 남북통합 상황에서는 해륙국가(sea-land state)로 변화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대륙 경략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인태전략에서 한반도 전략이 상대적으로 소홀시 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인태전략의 전략적 함의에 대한 건설적인 논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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