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국방부 장관에 대한 여권의 인물평은 일반 여론과 많이 다르다. 안보 전문가로서 국정의 적임자라는 것 외에 개인적 성품 면에서도 의외의 평가가 나온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CBS 인터뷰에서 "굉장히 인간적으로도 따뜻하고 좀 공정하다고 느낀 분"이라고 의정활동을 함께 한 경험을 소개했다.
여당의 한 원외인사는 신 장관의 실용적 성향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에게 "과거 언행은 문제가 있지만 장관이 되면 달라질 것이고 안정적으로 잘 해나갈 것"이라 말했다.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듯 신 장관은 과거의 막말과 극언, 극단적 주장과 관련해 인사청문회를 전후로 태세를 전환했다.
그는 전두환 신군부의 12.12 쿠데타를 "나라 구하려고 나온 것"이라고 한 과거 발언에 대해 본의가 와전된 것이라며 "쿠데타는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고, 대한민국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국무위원이 된다면 개인적 사견이 아닌 정부의 공식적 견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 덧붙였다. 청문회 통과용인지는 몰라도 독불장군 이미지는 조금이나마 완화됐다.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극언과 비방에 대해서도 유감 표명에 이어 사과 의사를 밝혔다.
야당과 다수 국민의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장관 후보자 지명 초기에는 유감 표명조차 인색했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태도임이 분명하다.
신 장관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와 관련해서도 장관 취임 후에는 언급 자체를 피하며 관리 모드에 들어갔다.
사단장 시절 '멸공'도 아닌 '멸북 통일' 구호를 만들고 군 전역식에선 '북진 통일'을 거론했던 극단적 이념성에 비춰 이례적 신중함이라 할 만하다.
수도방위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 등 군의 핵심 요직을 거치고 의정 경험까지 쌓은 만만찮은 관록이 자연인 시절의 신원식과 선을 긋게 한 것으로 보인다.
신 장관은 그러나 유독 9.19 남북 군사합의 만큼은 실용보다 매파적 사고를 끝내 고수하고 있다.
당초 합의 '파기' 주장에서 법적 절차 때문에 '효력정지'로 후퇴하긴 했지만 남북의 마지막 군사적 완충 장치마저 제거하는 위험천만한 결정을 밀어붙이려 한다.
그는 매국노 이완용 옹호 발언 논란에 휘말린 것도 문재인 정부의 '매국적' 국방정책을 비판하다 생긴 오해라고 해명할 정도로 9.19 합의에 적대적이다.
그는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에는 감시‧정찰활동 제한을 이유로 당장에라도 효력정지를 단행하려는 기세다.
물론 9.19 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으로 대북 대응태세가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9.19 합의가 우리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합의라 할 수 없고, 북한에게도 크든 작든 군사적 족쇄로 작용한다.
빈센트 브룩스와 로버트 에이브럼스 등 주한미군사령관들이 재임시 9.19 합의에 일관된 지지를 표명한 것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무엇보다 9.19 합의 이후 남북 군사충돌이 극적으로 줄어든 점을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때 228회, 박근혜 정부 때 108회였던 북한의 국지도발 횟수가 문재인 정부 때는 5회에 그쳤다.
차제에 화끈하게 9.19 합의를 파기하는 게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과연 후과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에도 전운이 일며 세계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해진 시기다. 한반도나 대만에 제3의 전선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우리가 나서서 재촉하는 꼴이다.
하마스가 북한제 무기를 쓴 정황이 공개되고, 미국 항공모함 전단이 한반도와 이스라엘에 동시에 전개된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9.19 합의라는 마지막 안전핀마저 뽑아 던지기에 앞서 오히려 철저한 합의 준수를 북한에 요구하는 게 신중하고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일 것이다.
신 장관의 9.19 합의에 대한 한없는 적대감을 감안하면 기대난망이지만, 한때 가장 훌륭한 대통령 후보라 칭송했던 유승민 전 의원과도 결별한 정무 감각을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하지만도 않아 보인다.
신 장관은 여느 정치인 이상으로 쇼맨십과 스킨십이 좋고 언변과 순발력이 뛰어나며 군인이 아니라 정치를 해도 잘 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우리 국방장관으로는 이례적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