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특수활동비 기록을 전수 분석한 결과, 기밀 수사에 써야 할 특수활동비를 격려금·포상금으로 지급하는 등 기획재정부 지침과 감사원 계산증명규칙을 어긴 예산 오·남용 사례가 확인됐다.
'세금도둑잡아라' 등 3개 시민단체와 뉴스타파 등 6개 언론사로 구성된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공동취재단)'은 12일 오후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양지청으로부터 수령한 특수활동비 지출증빙자료 700여건에 대한 판독 결과를 발표했다.
5년 8개월 고양지청 특수활동비 869건 전수조사
공동취재단이 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확보한 고양지청의 특수활동비 기록은 2017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68개월간 869건이다. 이 기간 집행한 특수활동비는 3억 5766만 5300원이다. 고양지청은 특정 패턴이 찍히는 도구를 이용해 특수활동비 집행내용 등을 가림 처리 했지만, 공동취재단은 이 가운데 697건을 판독해내고, 64건을 부분 판독했다. 집행내용을 해독한 건수는 80.2%로 지출 금액으로는 2억 5800만 원 수준이다.
감사원 계산증명지침은 검찰이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사용할 경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빙 기록인 집행내용확인서 등을 반드시 남기도록 하고 있다. 지급일자, 지급금액, 지급상대방 뿐만 아니라 지급사유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만약 지급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함으로써 수사 및 정보수집활동에 심각한 지장이 발생할 경우 집행내용 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지만, 기관장이 이를 확인하는 별도의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이 고양지청 기록을 전수 분석한 결과, 특수활동비 집행사유는 △수사활동 49.2% △정보교류활동 8.9% △검거활동7% △공판활동 3.8% △집행활동 2.7%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집행사유가 "수사활동 지원", "수사업무 지원"으로 적힌 지출 건은 529건으로 전체의 60.8%, 금액으로는 1억 7606만 8500원으로 전체의 49.23%를 차지했다.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특수활동비는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 활동 또는 정보 수집 활동에 쓸 수 있다"며 "실제 그런 용도로 썼다고 볼 수 있는 게 절반 수준이고, 나머지 검거· 공판·집행 활동 등은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 활동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밀 수사 목적' 특활비, 검사 격려금·포상금으로 부정 사용
특수활동비는 격려금이나 포상금 등으로 쓸 수 없지만 검찰이 가림 처리한 집행 사유란에 버젓이 "격려", "포상" 등이 기재돼있는 사실도 공동취재단의 판독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전수 분석 결과 고양지청은 상습적이고 반복적으로 특수활동비 예산을 격려금과 포상금으로 부정 사용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고양지청의 '2018년 1월 22일 100만원의 특수활동비 영수증'에서 집행요지가 가림 처리됐지만, 판독 결과 "2017년 4분기 자유형 미집행자 검거 우수 사례 대검 격려"라고 적혀 있었다. 또 '2017년 9월 26일 100만원 특수활동비 영수증'에서도 가림 처리된 집행요지를 판독한 결과 "대검 우수수사사건 선정 포상 (유ㅇㅇ 검사)"라고 기재돼 있었다.
하 변호사는 "포상금은 기타 보증금 항목으로 써야 하고 법령상 근거도 있어야 한다"며 "임의로 특수활동비에서 지출한 것은 일종의 부정 사용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격려금도 기타 운영비에서 쓸 수 있지 특수활동비로는 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청장 셀프 수령'·'부서별 나눠먹기'·'연말 몰아쓰기' 행태 포착
또 공동취재단은 지청장이 인사 이동 직전 특수활동비를 수령한 사실도 확인했다. 고양지청 김국일 전 지청장은 2018년 7월 15일 특수활동비 150만원을 현금으로 수령했다. 김 전 지청장은 "수사 목적 당설에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다"며 집행내역서를 생략하고 특수활동비 150만원을 받아가며 결재도 본인이 직접했다.
그런데 이날은 김 전 지청장이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자리를 옮기기 3일 전이었다. 김 전 지청장은 공동취재단과의 통화에서 "인사 발표 이후 두문불불하던 때"였다며 "일요일에 출근했을리 없고, (특수활동비 수령)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같이 검찰 고위직이 '쌈짓돈' 같이 특수활동비를 받아가거나 부서별 나눠주기 행태는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2018년 8월 23일 고양지청에서 100만 원 1건, 50만 원 4건의 특수활동비가 집행됐다. 이날 집행내역기록부에 까맣게 칠한 알파벳 패턴으로 가려진 수령인 이름과 직함은 "신호철 차장검사"로 복원됐다. 같은 날 집행된 50만 원짜리 4건의 집행사유도 각각 "공안사건 수사활동 지원", "환경범죄 수사활동 지원", "마약범죄 수사활동 지원", "조세범죄 수사활동 지원"으로 나타났다.
공안·마약·조세·환경은 각각 고양지청 형사 1·2·3·4부 담당 업무다. 고양지청 각 부서별 분장된 업무 역할을 명목으로 같은 금액의 특수활동비를 같은 날 똑같이 나눠 집행한 사실이 확인돼 '부서 나눠주기'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2019년 11월 19일 "수사정보 교류활동 지원"이라는 동일한 집행사유로 5명이 100만 원씩 같은 금액의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수령했다. 공동취재단이 복원한 이 날의 집행내역기록부 수령인 이름과 직함에는 "차장검사"와 "1·2·3·4 부장검사"가 확인됐다.
그 다음 달인 2019년 12월 17일 역시 "수사정보 교류활동 지원"이라는 동일한 집행사유로 "2·3·4 부장검사"와 직함을 복원할 수 없었던 '불상의 1인'까지 총 4명이 똑같이 100만 원의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수령했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돈을 배분한 듯 나타나는 패턴에 대해 공동취재단은 "특별히 기밀이 필요한 수사에 집행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라며 '부서별 특활비 나눠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또 고양지청이 특수활동비를 매년 11월과 12월에 몰아 집행하는 행태도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연간 특수활동비 지출총액 중 11월과 12월 두 달 동안 지출된 금액 비율은 △2018년 44.44% △2019년 34.33% △2020년 39.47% △2021년 40.93% △2022년 29.08%로 나타났다.
공동취재단은 "761건의 집행사유를 판독한 결과 △공개돼서는 아니됐을 국가 안보 △어떤 수사 결과에 지장을 줄만한 중요한 비밀 △보호받아야 할 특정인의 개인정보 등은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관행적 나눠먹기 등 오남용 사례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등 그동안 검찰의 비공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검찰 특수활동비의 민낯이 선연히 드러났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고양지청 전수 조사 자료는 전국 67개 지방검찰청 특수활동비 자료 약 6만장의 고작 1.3% 수준"이라며 "빙산의 일각을 확인했는데도 여러 오남용과 부정 사례가 잇따라 확인됐다"고 밝혔다.
공동취재단은 이날 △국회 국정조사 착수, 특별검사 도입 등을 통한 진상규명 △특수활동비 대폭 삭감 및 특정업무경비 명목으로 전환 등을 촉구했다.
"검찰 특활비자료 더 공개해야"…법원에 간접강제 신청
공동취재단은 이날 대검찰청 각 부서가 보유 중인 특수활동비 집행내역과 지출증빙자료를 공개하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간접강제'란 행정청이 법원의 취소 처분을 이행하지 않을 때 이를 이행하게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를 말한다. 법원은 이행할 때까지 매일 일정 금액을 배상하라고 결정할 수 있다.
앞서 공동취재단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2017년 1월~2019년 9월 집행한 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특정업무경비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며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을 내 일부승소 판결을 확정 받았다.
이들은 올해 6월 대검으로부터 운영지원과와 총장 부속실이 보유한 자료를 제공받았다. 공동취재단은 이에 더해 각 부서가 관리하는 자료도 법원이 명령한 공개 범위에 포함되므로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동취재단은 기존 공개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2019년 10월 이후 자료도 공개하라며 법원에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