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전문지 네이처가 5일(현지 시각) 한국의 R&D 예산 삭감 계획에 대한 반응을 조명했다. 네이처와 함께 양대 과학전문지로 꼽히는 '사이언스' 역시 지난달 보도를 통해 R&D 예산 삭감 사태를 보도한 바 있다.
네이처는 이날 "R&D 예산삭감에 한국 과학자들이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네이처는 "R&D 지출 수준이 역사적으로 높았던 국가에서 일어난 예산 삭감은 강력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며 "한국 정부가 2024년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자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네이처는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도 유지됐던 연구 예산이 30여 년 만에 처음 삭감됐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한국을 세계 4대 연구 국가 중 하나로 만들기 위해 R&D 예산을 정부 총 지출 대비 5%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했다.
만약 국회 본회의에서도 R&D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주요 R&D를 포함한 전체 R&D 예산(25조9천억 원)은 정부 총 지출(656조9천억 원) 대비 3.94%에 그친다. 김소영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일종의 모순"이라고 했다.
네이처는 이번 삭감 예산안이 과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고도 전했다. 김두철 전 한국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의 말을 인용해 "(이번 사태로) 설계하는데 수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는 계획할 수 없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는 네이처에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연구 성과는 주로 오늘날 연구 그룹 간의 공동 연구에서 비롯된다"며 "유럽이나 미국만큼 국내 연구진의 협력이 많지 않아, 정부가 국제 연구 교류 예산을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케이 조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교수는 "국제 협력을 시작하려면 자금 조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연구센터, 대규모 데이터 저장 시설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오랜 기간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13년 한-영 신경과학 컨소시엄을 공동 설립하는 등 국제 협력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네이처는 이런 정부의 결정이 향후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젊은 졸업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STEM 연구가 다른 분야에 비해 안전성이 낮고 수익도 낮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내년도 예산 삭감을 앞둔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대학의 학생 연구원들은 "언제 내 자리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연세대, KAIST, 경희대, 세종대의 천문·우주항공 관련 학과 학생회장단으로 구성된 '천문 · 우주항공 분야 유관 학과 공동행동'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과 함께 예산 삭감에 항의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R&D 삭감과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천문 및 우주항공 분야의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는 학부생의 76.3%, 대학원생들의 92.1%가 예산 삭감이 향후 연구자로의 진로를 이어 나가는 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응답했다"고 밝혔다.
정부출연연구원 및 대학 연구자 노동 조합 11곳으로 구성된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도 이달 11일 R&D 예산 삭감의 원상 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연대회의는 "국정감사에 앞서 예산 삭감 철회와 연구 현장을 중심으로 한 올바른 과학기술정책을 위해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달 19일(현지 시간) "과학 연구 예산에서 떠오르는 스타였던 한국이 최근 연구자들과 논의 없이 예산을 삭감했다"며 과학 연구 현장에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