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구가 중국에 이어 아시아 2인자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오래 전 얘기다.
한국 농구의 위상은 2000년대 들어 중동의 '오일 머니'에 한 차례 휘청거렸고 최근에는 크게 발전하고 있는 일본 농구의 힘을 몸소 느끼고 있다.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남녀농구가 3일 오후 중국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 농구장에서 냉혹한 시험대에 오른다.
이날 같은 장소에서 두 경기가 열린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1시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이 개최국 중국을 상대로 8강전을 벌인다.
오후 9시에는 정선민 감독의 여자농구 대표팀이 결승 진출이 걸려있는 운명의 한일전을 펼친다.
남자농구는 지난 달 30일 아시안게임에 대표 2진급을 파견한 일본에 77-83으로 졌다. 대표팀은 라건아를 중심으로 하는 골밑의 힘을 믿었지만 최근 세계농구 트렌드에 발맞춰 스페이싱을 기반으로 한 농구를 구사한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한일전 패배는 뼈아팠다. 한국은 8강 직행 기회를 놓쳤고 12강 무대로 떨어졌다. 2일 밤에 열린 바레인과 8강 진출 결정전에서 88-73으로 승리했지만 그로부터 14시간 뒤에 개최국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허훈은 "14시간 만에 경기를 하는 건 처음"이라며 "중국은 강하다. 힘든 경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한국이 중국에 패한다면 2006년 카타르 도하 대회 이후 처음으로 메달 획득에 실패하게 된다.
남자농구와 달리 여자농구는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북한과 대결을 포함한 조별리그 일정을 3전 전승으로 마쳤다. 2일 필리핀과 8강전에서는 93-71로 크게 이겼다.
정선민 감독은 선수들을 고르게 기용하면서도 큰 점수차 승리를 거뒀다. 박지현, 김단비, 강이슬만이 20분 남짓 출전했다. 향후 토너먼트를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런데 다음 상대가 난적 일본이다.
일본은 개최국 중국과 더불어 지금까지 압도적인 승리 행진을 벌였다. 예선 3경기와 인도네시아를 상대한 8강전까지 총 4경기에서 평균 53.3점차 승리를 거뒀다. 일본은 100% 전력이라고 가정할 때 중국에게도 밀리지 않는 힘을 가졌다는 평가다.
일본 여자농구는 남자농구와 달리 최정예에 가까운 전력을 아시안게임에 파견했다. 은메달을 획득해 전 세계 농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2021년 도쿄올림픽 멤버가 7명이나 포함됐다.
일본 여자농구는 도쿄올림픽 당시 스페이싱에 '스프린트' 개념을 더한 빠르고 아기자기한 농구로 세계적인 강호들을 무너뜨렸다.
온주카 토루 감독은 8강전을 마치고 한국과 4강전에 대한 질문에 "우리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우리 스타일대로 경기해야 한다. 빠르고 민첩해야 한다. 빠른 공수전환을 통한 속공과 득점 기회를 잡아야 한다. 수비에서는 적극적인 자세로 주도권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수의 어깨가 무겁다.
박지수는 북한과 경기에서 햄스트링을 다쳤지만 이후 회복 운동을 정상적으로 했고 출전 시간 관리 하에 8강전에도 뛰었다. 일본의 스피드는 상대적으로 느린 정통 센터 박지수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그의 높이는 곧 여자농구의 경쟁력이다. 어떤 방식으로 그 장점을 살리느냐가 관건이다.
일본의 스피드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오픈코트 싸움도 치열할 전망이다. 국가대표 간판 강이슬과 김단비,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만능 플레이어 박지현의 역할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