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대표팀은 북한이 아시안게임 첫 경기에서 대만을 14점 차로 눌렀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신장 205cm의 센터 박진아가 51점을 넣었다는 이야기에 더 놀랐다. 북한의 전력은 그만큼 베일에 싸여있었다.
정선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9일 오후 중국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 농구장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마침내 북한과 만났다.
5년 전에는 하나였다. 남북 단일팀이 출전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땄다.
당시 단일팀에서 뛰었던 박지수, 강이슬, 박지현 등 3명은 올해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다. 북한에서는 로숙영과 김혜연이 항저우 땅을 밟았다. 그러나 5년 사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들은 연습 때 만났다. 그러나 북한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의 인사를 외면했다.
이처럼 냉랭하고 긴장된 분위기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은 다소 무거웠다. 박지수는 박진아에게 블록을 당하고 중거리슛을 연거푸 놓치는 등 불안하게 출발했다. 외곽에서 선수와 공의 움직임은 충분하지 않았다. 북한 역시 다득점을 하지는 못했지만 박진아의 압도적인 골밑 장악력으로 초반 기세를 잡았다.
대표팀의 분위기는 1쿼터 후반부터 나아지기 시작했다. 박지수가 박진아의 슛 타이밍을 읽어내고 블록슛을 해냈다. 박지수가 공격 시 외곽에 포진하고 김단비가 안으로 파고들어 전개하는 '하이-앤드-로우' 오펜스도 통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박진아를 중심으로 반격했다. 2쿼터 초반 21-11로 앞서갔다. 정선민 감독은 작전타임을 불렀다. 신지현과 이해란을 투입했다. 이해란이 3점 플레이를 완성해 분위기를 되살렸고 박지수가 중거리슛, 공격리바운드에 이은 득점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이때부터 정선민 호는 속공을 강조했다. 앞선에서 수비하는 선수는 공격으로 전환하는 타이밍에 빠르게 앞으로 달렸다. 이해란, 이소희, 김단비가 속공을 만들어내면서 대표팀 공격에 마침내 숨통이 트였다. 전반은 33-25로 앞선 채 끝났다.
북한은 로숙영, 박진아를 필두로 지난 1차전부터 주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선수층이 두텁지 않다는 의미다. 피지컬한 농구로 북한을 상대한 한국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북한이 서서히 지쳐갔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은 편안하게 경기를 운영했다. 후반 들어 마침내 강이슬의 3점슛이 터졌고 박지현, 김단비 그리고 박지수까지 3점포를 가동했다. 외곽이 살아나자 점수차는 20점까지 벌어졌다.
정선민 호는 북한을 81-62로 따돌리고 조별리그 2연승을 달렸다.
처음에는 북한 농구를 잘 몰랐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상대 스타일이 파악되자 혈이 뚫렸다. 정선민 호는 강력한 도움 수비로 박진아를 견제해 북한의 핵심 공격 옵션을 견제했다. 경기 내내 박진아와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였던 박지수의 공이 컸다. 그리고 과감한 속공을 시도하면서 공격 루트를 다양하게 전개했다.
공격 시 박지수의 위치 선정도 좋았다. 초반 박진아를 상대로 펼치는 골밑 공격이 여의치 않자 박지수의 포지션은 페인트존 바깥쪽 주변으로 변경됐다. 그곳에서 중거리슛을 던지거나 안으로 파고드는 포워드에게 기회를 연결했다.
박진아는 29득점 17리바운드로 활약했다. 경기 내내 집중 수비를 상대했음에도 강력했다. 동작은 다소 느렸지만 피지컬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박진아를 향한 한국의 더블팀 수비 이후의 대응이 부실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과감한 승부수가 통했다. 북한의 3점슛 성공률이 20%대에 불과했다.
박지수는 18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로숙영-박진아를 앞세운 북한 골밑에 당당하게 맞섰다. 하지만 경기 막판 다리 부상으로 교체됐다. 김단비는 16득점 7어시스트를, 강이슬은 16득점을 보태며 팀 승리를 견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