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가 R&D(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신진 연구자' 지원은 확대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신진 연구자 가운데 '특출난 일부'의 지원이 늘었을지 모르지만 전반적인 신진 연구자들의 실질적 지원이 대폭 삭감됐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번 예산안 조정으로 인해 연구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이로 인한 피해는 신진 연구자들이 가장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 R&D 예산 삭감으로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신진 연구자들에 대한 만남을 지속적으로 이어오며 이들에 대한 지원 확대를 강조했다. 이종호 과기부장관은 지난 15일 신진 연구자들과 학생 연구원의 의견을 듣기 위한 간담회에서 "정부 R&D 비효율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젊은 연구자 성장을 위한 예산은 축소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3일 이 장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선도적 R&D로 나아가기 위해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조정하고 R&D 다운 R&D,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는 확대했다"고도 밝혔다. 과기부는 특히 전체 R&D 예산은 실질적으로 올해 대비 10.9% 감액됐지만, 젊은 과학자 지원 예산은 2023년 5348억원에서 7581억원으로 대폭(41.8%) 증액됐다고 했다.
과학기술계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우수한 신진'을 위한 지원을 늘렸을 뿐 오히려 전반적인 신진 연구자를 위한 지원을 아예 빼버려 연구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구자주도 기초연구사업은 과기부의 '개인기초연구'와 '집단연구지원', 교육부의 '이공학학술기반 구축 사업'으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개인기초연구'는 '우수 연구'와 '생애기본연구'로 나뉜다. 우수연구는 또 △리더연구 △중견연구 △한우물파기 기초연구 △신진연구로 나뉘고, 생애기본연구는 △생애첫연구와 △기본연구로 나뉜다.
우수연구는 말 그대로 우수한 연구자가 연구 역량을 발전시켜 연구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수월성' 중심의 연구지원 강화를 위한 사업이다. 생애기본연구는 연구의지와 역량을 가진 연구자에게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을 위해 소규모 기초연구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게 목표다.
이중에서도 생애첫연구는 개인기초연구사업 수혜 경험이 없는 대학 이공분야 전임 교원으로 박사학위 취득 후 7년 이내 또는 만 39세 이하의 그야말로 신진 연구자를 위한 사업이다. 젊은 연구자들이 처음 정부사업 수주 경험을 쌓기 위한 문턱을 낮추는 취지로 도입됐다. 실제 사업에 대한 호응도 높아 정부 또한 지속적인 확대 기조를 밝혔다. 2021년 과기부는 생애첫연구 신규 과제 수를 2021년 506개, 2022년 600개, 2023년 800개까지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기초연구 예산을 분석한 천승현 세종대 교수는 "우수연구 즉 '수월성'을 확대하고, 생애기본연구 즉 '보편성'은 포기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것"이라면서 "과거 과기부는 수월성, 교육부는 보편성(기본연구)로 역할 분담을 했다가 과기부가 기본연구를 가져가면서 둘 다 하기로 한 건데 이제 와서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기초연구연합 간담회에 참석했던 오경수 중앙대 교수는 "당장 계속 과제 연구비가 내년에 깎인다는 것은 너무나 황당한 상황"이라면서 "작년 5~6월 계획을 짜서 동료들에게 심사를 받고 연구 계획을 해 사람을 고용하고 학생들이 이를 통해 장학금을 받거나 연구비를 받는데 당장 내년에는 20%를 깎는다면 임금을 줄여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상당히 많은 실험실에서 완전히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고 상황을 전했다.
호원경 서울대 명예 교수도 "지금처럼 수월성 위주의 과제를 더 늘리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밑에서 올라가야 하는데 그 밑장을 다 빼는 게 정말 효율성이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호 교수는 "신진 연구자 과제를 늘리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 연구비를 깎는다? 이들은 다른 그룹이 아니다"라며 "내 과제가 끝나는 게 24년이면 24년이 신규가 되는 것이다. 내년 과제를 지원해야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다같이 동요를 하고 있는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지적했다.
이동헌 카이스트대학원 총학생회장은 "기초연구는 단기간 내 산업화를 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보니 수십년을 보고 투자를 해야하는데 그 부분이 투자가 줄어들게 되면 이공계 인재들이 기초과학을 선택하지 않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이공계 대학원생은 "중견 과학자의 연구비는 곧 그 연구실 대학원생들의 연구비"라면서 "대학원생은 독립적으로 '젊은 과학자 예산'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도 교수의 프로젝트에 참여 연구원으로 공부하는 미생들이다. 중견 과학자들을 쓰러뜨리면 학생들은 바스라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