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기초의회에서 속기 업무를 담당한 임기제 공무원이 폭언과 성추행, 과도한 업무 등 갑질에 시달렸다는 주장이 나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속기직 공무원 사이에서는 임기제 직원들이 행정 등 기타 업무를 떠맡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부산CBS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동구의회에서 임기제 공무원으로 근무한 A씨는 지난 13일 내부 메신저를 통해 자신이 근무 중 겪은 폭언과 성추행 등을 부산지역 16개 구·군 속기사와 동구청 전 직원에게 폭로했다.
A씨는 2021년 6월부터 2년여간 동구의회 임기제 속기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의회사무과 직원에게 잔심부름, 행정업무 보조 등 업무 외 지시를 비롯해 모욕적인 언행과 성추행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회의장에 필요한 서류를 3㎝ 간격으로 정리해라", "경조사 봉투를 사 오라"는 등 잔심부름부터 부산 16개 구·군 사례 조사를 비롯한 행정업무 등 온갖 잡무에 시달렸다는 게 A씨 측의 설명이다.
또 A씨는 지난 5월 출장 당시 한 직원이 자신의 신체를 만졌다며, 강제 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부산진경찰서는 고소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 경위를 확인하는 등 수사에 나섰다.
A씨는 "맡은 업무를 다했음에도 계약직 속기사라는 이유로 타인의 업무도 떠맡았다"며 "이를 거부하면 '어려서 자기밖에 모른다'는 등 폭언을 반복적으로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속기사는 회의가 끝나면 회의록 검토, 수정 등에 드는 시간이 회의 때 속기 시간의 2~3배에 달하지만, 그때부터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업무를 맡기기 시작했다"면서 "속기사는 전문자격증과 타 기관 경력, 기술 등을 갖춘 전문 인력임에도 의회 내부에는 돈을 편하게 번다는 인식이 만연했다"고 덧붙였다.
부산지역 속기직 공무원 사이에서는 속기직렬에 행정보조 등 업무를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하고 있다. 특히 동구의회처럼 비교적 규모가 작고, 속기사를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할 경우 속기사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는 지적이다.
부산에서 속기사를 모두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기초의회는 동구와 해운대구 등 2곳뿐이다. 대부분 의회는 속기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정례회가 다가오거나 휴직자로 결원이 생길 경우에만 기간제로 뽑고 있다.
부산의 한 기초의회 10년차 속기직 공무원 B씨는 "보통 속기가 끝나면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회의 이후에도 오타를 수정하고 검토, 검수 작업을 거쳐 책도 발간하고 의회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을 한다. 회의가 끝나도 일은 남아 있다"면서 "속기 직렬이 확립된 지 얼마 안 됐고 소수 인원이다 보니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고 속기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의회 규모가 작을수록 속기사에게 행정, 서무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있다"며 "동구의 경우 속기사를 임기제로 채용하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속기직 공무원 C씨는 "속기사를 회기 때만 뽑는 경우도 있고 채용 자체가 많지 않다"며 "이 때문에 임기제로 채용되면 계약 연장 등을 고려해 본인 업무 외 부탁을 거절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에 대해 동구의회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등 사실관계를 파악할 예정이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속기직 채용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다.
동구의회 이상욱 의장은 "직장내 괴롭힘, 갑질이 있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구청과 함께 조사위원회를 꾸렸다"면서 "추후 조사를 마무리한 후 문제가 발견될 시 징계위원회를 거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속기직 채용 방식과 관련해서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려면 정원 등 조례를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검토하진 않았다. 이번 사건이 표면으로 드러난 후에 업무 관계 등을 파악했다"면서 "추후 이번 사안이 정리되면 채용 형식에 대해서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