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신'의 시작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지나 연출은 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궁화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당시 이자람과 함께 이순신에 관한 뮤지컬을 제안받고 통영의 이순신 유적지를 찾아 다녔다. 판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적벽가'가 좋았다"고 말했다. 그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판소리 '적벽가'도 있는데 왜 이순신의 해전을 다룬 판소리는 없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이순신의 멋짐을 판소리로 표현한 뮤지컬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는데 작품 제작이 무산됐죠."
'순신'은 인간 이순신의 삶과 고뇌를 판소리, 뮤지컬, 무용, 이미지 등이 결합된 총체극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 연출은 "이순신의 일생을 나열하는 것에는 관심 없다. 대신 그가 초인적으로 이겨낸 고통과 고통 속에 살면서 조선을 구해낸 힘이 무엇이고, 극한의 고통이 그를 얼마나 강하게 했는지를 판소리와 무용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순신의 40여 가지 꿈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건과 교차 편집했다. 용맹한 장수이자 충직한 신하이고 효심 깊은 아들이며 가슴 아픈 아버지로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담았다. 이지나 연출은 "이순신은 꿈을 많이 꿨다. 꿈에는 희로애락이 농축돼 있고 예지몽도 많아서 꿈 이야기를 엮었다"고 말했다.
이순신 역은 서울예술단 단원인 무용수 형남희가 맡았다. 소리꾼이자 서술자로서 극의 흐름을 이끄는 '무인' 역은 이자람과 서울예술단 단원인 윤제원이 번갈아 연기한다. 이 연출은 "무대예술로 어떻게 장르적 차별화를 줄까 고민했다"며 "이순신의 육체적 고통은 무용수가 움직임과 춤으로, 내면은 '무인' 캐릭터와 5명의 코러스가 대사와 노래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한산도 대첩·명량 해전·노량 해전 등 주요 해전 장면은 고수와 함께하는 전통적 판소리로 담아낸다. 이자람 작창은 "임진왜란과 한산도 대첩까지는 곡이 멋지게 나왔다"며 "전통 판소리 어법에 맞게 쓴 다음 동시대적인 느낌이 나도록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대미술도 볼거리다. 극장의 깊이를 십분 활용해 이순신의 고통을 상징하는 20m 깊이의 동굴 같은 구조물을 설치하고 9대의 프로젝터를 이용한 프로젝션 매핑을 활용한다. 오필영 디자이너는 "이순신하면 거북선이나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릴 텐데 좀 더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정치적·사회적 상황에 굴하지 않고 본분에 충실했던, 그로 인해 많은 고뇌를 떠안았던 인간 이순신을 소환하는 것이 현재 한국 상황에서 관객에게 새로운 자극과 지표를 던져줄 거라 생각한다"며 "창작진의 도전이 새로운 공연 양식의 단서를 마련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