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최근 급증한 가계빚에 칼을 빼들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우회 논란을 빚었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 산정 만기를 최장 40년으로 제한하고 가산금리를 적용해 대출 한도 축소에 나섰다.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도 오는 27일부터 중단한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는데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50년 만기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나자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문제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대책으로 보인다.
8월도 가계부채 급증…'50년 만기 주담대' 산정만기 40년으로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8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8월 말 기준 1075조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9000억 원 증가했다. 잔액 기준으로 전월에 이어 사상 최대를 재차 경신했다.
5개월 연속 증가세로 8월 증가폭(6조9000억원)은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2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가계대출 증가를 이끈 것은 주담대였다. 8월 주담대는 전월보다 7조원 늘어난 827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6개월 연속 상승을 보였다. 8월 증가폭(7조원)은 2020년 2월(7조8000억원) 이후 3년 6개월 만에 최대 폭이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처럼 심상치 않자 금융당국은 앞서 가계대출 증가 '주범'으로 지목했던 50년 만기 주담대를 우선 손보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올해 총 8조3000억원이 공급됐는데 그 가운데 6조7000억원이 7월과 8월에 집중되면서 가계대출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원리금을 5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대출 상품이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대출자가 갚아야 할 원리금은 늘지만 대출자 입장에서 전체 대출 한도는 늘어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금융당국의 문제의식은 '갚을 수 있을만큼 빌려서 처음부터 나눠갚는다'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났다는데 있다.
금융당국이 밝힌 50년 만기 주담대 구성을 보면 차주 단위 심사가 미비한 집단 대출이 4조5000억 원, 개별 주담대가 3조7000억 원이었다. 특히 50년 만기 주담대 중 집단 대출은 평균 DSR이 50.4%로 규제 기준인 DSR 40%를 초과한 대출이 상당수였다. 50년 만기 주담대 이용자는 40~50대가 전체의 57.1%였으며 60대 이상도 12.9%나 됐다. 기존 주택 보유자가 전체의 52%나 차지했으며 2주택 이상 보유자도 18%였다.
결국 50년 만기 주담대가 집단대출이나 다주택자 등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취급되면서 가계 부채 급증, 투기 수요 유입 등 시장 리스크 확대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아울러 대부분 대출이 고정금리가 아닌 혼합형 또는 변동 금리로 이뤄져 차주가 장기간 금리 변동 위험에 노출해 가계 부채 리스크를 키울 우려까지 있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결국 금융당국이 강력한 대책을 내놓게 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대출 전 기간에 걸쳐 상환능력이 입증되기 어려운 차주의 경우 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제한했다.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도 오는 27일부터 중단된다.
금융당국 "은행들이 조심성 없었다"…은행들 "50년 대상 기준 모호…혼란"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이 이날 내놓은 주담대 만기 40년 제한 조치에 대해서 이미 선제적으로 연령 제한 및 취급 중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7, 8월 급증세를 견인한 것은 50년 만기 주담대였으니 이번 조치의 취지를 이해한다"면서 "향후 정부로부터 가이드라인이 내려오면 내부 논의를 거쳐서 상환능력을 고려한 여신심사 기준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DSR 산정 기한을 40년으로 제한하면서도 개별 차주별로 상환능력이 명백하게 입증되는 경우에는 실제 만기를 50년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운영한다는 방침에 대해서는 기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퇴직연금 등 다른 소득이 있는지 등을 고려해 대출(만기)을 좀 늘릴 수 있지 않는 여지가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이 부분은 차주별 상황이 제일 중요하고 세세한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경우에는 50년 상환이 가능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씀드린다"면서도 "다만 일률적인 기준을 주고, 이 기준에 부합하면 무조건 대출을 내주는 행태는 적합한 대출행태는 아니다. 요건만 맞으면 내주는 것이 아니라 차주가 소득을 갖췄는지, 소득이 일정한지, 과연 주택을 거주 목적으로 활용할지 등은 은행의 심사를 통해 확정해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DSR이 상환능력을 가늠하는 것인데 추가로 어떤 기준을 보고 판단해야 할지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서 "결국 지금보다 대출 심사가 더 타이트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방향과 방법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대출 수요 그대로인데… 가계대출 관리될까
향후 주택경기 흐름과 함께 정부가 규제를 강화한 50년 만기 주담대와 인터넷전문은행·특례보금자리론 금리가 어느 정도 억제 요인으로 작용하는지에 따라 향후 가계대출 추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주택거래 자금 수요를 바탕으로 한 주담대 증가세를 이번 대책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반기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등으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시장에 형성된 상황에서, 50년 만기 주담대를 제한하고 한도도 거의 찬 특례보금자리론을 제한한다고 해서 가계부채가 줄어들 수는 없을 것이란 얘기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가계부채를 줄이는 대책을 분명히 필요하지만 현 대책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 가계부채를 거둬들여 줄이는 근본대책은 아니다. 가계부채 관리와 내 집 마련에 대한 수요 사이에서 적절하게 조절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대책으로 추후 부동산 시장에 영향이 가게 되면 또 대출을 풀어 막겠다고 나서지는 않을지 걱정"이라면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금융당국 등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