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먹여 살리려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아버지 억울한 누명 벗겨주십시요."
12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재판장 허정훈)의 심리로 열린 탁성호 '납북어부' 재심 첫 공판에서 고(故) 김도암씨 큰 딸 김정숙(56)씨는 50년간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무죄를 호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재판에 앞서 만난 취재진에게 "부모님 모두 잘 돌아가셨지만 무죄로 판결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라며 "하늘나라에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계실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50년 전, 6살 때 엄마 손을 잡고 교도소로 아버지를 보러 갔던 일, 그로부터 몇 년 후 아버지가 가정으로 돌아왔지만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돼 정상생활을 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봐야했던 일, 이런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 등을 전하며 눈물을 훔쳤다.
김 씨는 "아버지는 고문으로 인해서 몸이 많이 아파서 병원생활을 했고, 어머니가 가정을 꾸리느라 너무 힘들었다"며 "2남 3녀의 생계를 책임지려 어머니는 매일 약초를 캤고, 또 그 약초를 다려서 아픈 아버지를 먹였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너무 힘들게 사는 엄마를 보며 '엄마, 우리 버리지 마. 아빠도 같이 살리자'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그만큼 간첩이란 누명으로 한 가족의 삶이 너무 무너졌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엄마와 함께 아버지가 계신 교도소에 갔었을 때 아버지가 속옷을 입은 채 고문 당했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며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자식들에게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너희들을 잘 가르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탁성호 어부 5명은 1971년 동해에서 조업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됐다.
북한으로부터 풀려나 고향 여수에 돌아왔지만, 북한에서 간첩 지령을 받은 뒤 의도적으로 풀려나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했다며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불법 구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며 재심을 신청했고 올해 6월 재심이 결정됐다.
검찰은 이날 선원들에 대한 "강요 행위가 있었다"며 인정하며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불법 구금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됐고, 1972년 9월 7일 함께 귀환한 다른 어선 선원들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된 점 등을 고려해달라"며 "피고인들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돼 증거 능력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반공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그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평생 간첩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 속에 한스러운 삶을 사셨다"며 "재판부에서 뒤늦게나마 무죄를 선고해 주시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과거 잘못된 사법부의 판단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다른 유족 심명남 씨는 "유가족들은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과 수사력 위반으로 빨갱이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고 있다"며 "탁성호 사건은 국가가 당연히 지켜워야 할 의무를 지켜주지 못한 사건"이라고 호소했다.
선고는 다음 달 26일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