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맞지 않는 구두는 싫어."(극중 카르멘)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이 각색·연출한 연극 '카르멘'은 매력적인 집시 여인 카르멘과 병사 돈 호세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동시대적 감수성으로 재해석했다.
이 작품은 카르멘을 '바람둥이 여자'로, 돈 호세를 팜므파탈에게 놀아난 '불쌍한 남자'로 그리는 여느 작품과 달리 각각 끔찍한 스토킹 피해자와 집요한 스토커로 바라본다.
고선웅 연출은 8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카르멘은 크게 잘못하지 않았고 돈 호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메시지에 관객들이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카르멘을 재조명해서 그의 명예가 회복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중 돈 호세는 자유롭고 솔직한 카르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카르멘에게 집착하다가 결국 살해한다.
고 연출은 "마지막 장면에서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이고 난 후 '내가 카르멘을 가졌다'고 외친다. 집착으로 광증에 사로잡힌 돈 호세의 모습을 통해 (스토킹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돈 호세를 연기하는 김병희 역시 "사랑은 상대를 아껴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것이다. 돈 호세는 상대를 아프게 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라며 "돈 호세가 처했던 상황에 집중하면 연민이 느껴지지만 그의 선택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카르멘은 자유를 갈구하는 주체적 여성으로 그려진다. "어차피 내가 갈 길, 뒷걸음질은 싫어"라고 외친다. 돈 호세가 '당신이 먼저 유혹했다'고 힐난하자 "네가 넘어왔잖아"라고 받아친다. 카르멘 역의 서지우는 "자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러한 노력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작품은 고 연출의 각색을 통해 시(詩)극으로 탈바꿈했다. 그는 "대사를 시 낭송하는 것처럼 하면 연극의 맛이 날 것 같았다"며 "자연스러움만으로는 무대를 채울 수 없다. 이렇게 하면 문학적 향취가 느껴지고 연극의 존재 이유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에스까미오 역은 강신구(서울시극단), 미카엘라 역은 최나라(서울시극단), 카르시아 역은 장재호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