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순수함'이라는 단어만큼 선과 악을 모두 수식하는 데 어울리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에실 보그트 감독이 포착한 '이노센트'는 우리가 잊고 있던 순수한 선과 악이란 경계에 놓인 어린아이의 마음을 알아가고 다가가게 만드는, 또 다른 의미의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다.
이다(라켈 레노라 플뢰툼)와 안나(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는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한 직후 또래인 벤자민(샘 아쉬라프), 아이샤(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와 친구가 된다. 네 명의 아이들은 어른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 특별한 잠재력을 깨워나가기 시작하고, 벤자민은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호기심과 장난으로 행해지던 어떤 일들이 급기야 분노라는 감정과 이어지고, 벤자민은 결국 친구들을 비롯해 주변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노센트'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데뷔작 '리프라이즈'부터 최근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까지 모든 작품의 각본가로 활약한 에실 보그트가 '블라인드'(2014)에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연출작이다. 에실 보그트 감독이 '이노센트'를 통해 들여다본 건 순수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어린아이들의 세계다.
이러한 이다와 안나를 비롯해 영화의 주인공인 네 명의 아이는 모두 '결핍'을 지닌 인물이다. 부모로부터 기인한 애정 결핍, 무관심과 가정 폭력 그리고 또래 친구의 부재가 빚어낸 상처 등으로 마음 한편에 크고 어두운 동공(洞空)이 생겨난 아이들이다. 이렇게 각자 결핍을 가진 네 명의 아이는 서로 함께하며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
원래 염력을 갖고 있던 벤자민과 일종의 텔레파시처럼 마음을 알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이샤는 이다, 안나와 함께하며 자신의 능력을 더욱더 키워나간다.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움직일 수 있는 염동력과 마음을 알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 모두 인물들이 지닌 결핍과도 연관된 능력이다.
벤자민이 지닌 능력인 염력은 자신의 의지로 물체를 움직이는 능력이다. 엄마의 무관심과 가정폭력은 물론 또래집단에서조차 배제된 벤자민이 가장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샤와 달리 벤자민은 누군가와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보다 자신의 능력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는 데 이용했고, 결국 타인의 마음을 점차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모두가 초능력을 가졌지만 여전히 아무 능력도 발현되지 않았던 이다는 벤자민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능력이 없기에 자신이 가진 순수한 신체적 능력만으로 벤자민을 막고자 하지만 역부족이다. 또한 어른들은 주변에서 다가오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아이의 경고조차 듣지 못하고 결국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다는 언니 안나가 위기에 처한 걸 깨달은 순간 비로소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언니의 아픔을 모르고 소통하려 하지 않았던 이다가 안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진정으로 걱정하게 되며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성장'이란 측면에서도 벤자민은 결핍을 채우는 방식으로 타인과의 소통이 아닌 타인을 해하는 길을 선택했다. 마음이 황폐해진 벤자민은 안나까지 해치려다 결국 이다와 안나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다와 달리 벤자민은 결핍을 끌어안은 채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를 상징한다.
이처럼 '이노센트'는 결핍을 가진 아이가 어떻게 결핍을 채워나가는지 혹은 채워나가지 못하는지를 호러라는 영화적 문법으로 풀어냈다. 감독은 영화 내내 아이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추고, 중간중간 아이들의 놀이문화와 그들만의 소통을 클로즈업하며 아이들 문화와 그들의 마음이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미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된 우리는, 어린 시절 모습과 기억이 희미해졌을지는 몰라도 영화 속 네 명의 아이들을 보며 그때를 떠올리게 된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그러한 것처럼, 스크린 바깥에 위치한 관객에게도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를 조금이나마 희미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적 체험을 안겨준 일등공신은 이다, 안나, 벤자민, 아이샤를 연기한 라켈 레노라 플뢰툼, 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 샘 아쉬라프, 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이라는 앞으로가 더욱더 기대되는 네 명의 배우가 펼친 열연이다.
117분 상영, 9월 6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