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 관료와 저출산 이야기를 할 때 꼭 나오는 TV 프로그램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MBC의 인기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저출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 육퇴 후 숨죽여 낄낄거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프로그램이 뭐가 문제죠?라는 마음을 담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니 다급한 해명이 돌아옵니다.
"저랑 제 아내도 정말 좋아하는 프로그램이긴 한데,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멋있게 즐겁게 표현되는 게 좀 그래요. 가족이 함께 사는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더 많아져야 하지 않나 싶네요."
"아..예" 떨떠름한 표정에 대답이 짧아지자 그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다른 고위 관료는 '금쪽이'로 유명한 육아 상담 프로그램이나 결혼 상담 프로그램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결혼과 육아의 최악의 상황을 보여줘 미혼들에게 결혼에 대한 공포심을 주고 결혼을 꺼리게 만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혼자 사는 건 '결과'이자 '현상'입니다. 정부 정책은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원인을 찾아 그 결과를 바꾸려는 '노력'입니다.
이미 벌어진 '현상' 탓을 하는 정부 관료의 말이 크게 와 닿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료의 '핑계'같은 말들은 어쩌면 저출산 정책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정부가 2006년부터 15년 넘게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은 돈만 280조원입니다. 수백조원의 돈을 들여도 말 그대로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지만, 내년도 정부 정책도 지난해와 올해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부모 급여를 올리고, 육아 휴직을 늘리고…기존 정책의 업그레이드 수준인데 현금성 지원을 늘리는 게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을 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 천정부지 집값, 높은 사교육비 등 사회 여러 요소가 얽히고 설킨 저출산 문제에 현금 지원만 늘린다고 출산율이 오르지 않을 거라는 시민단체의 분석이 힘을 얻는 이유입니다.
30일 발표된 합계출산율은 0.7명입니다. 수도 서울의 경우는 0.53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고 국내 1위 세종도 1명선이 깨졌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올해 말 0.7선이 붕괴될 가능성도 크다고 합니다.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일회성 현금 지원을 넘어서는 지금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나 혼자 산다'가 몇 십년 후 '아무도 안 산다'가 되지 않도록 국가 소멸을 대비하는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